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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21. 2019

서른을 쓰는 이유

(서른 랩소디)

왜 나는 서른을 쓰려고 하는가?


서른이 되어 처음

대구에 놀러 가서 김광석 거리를 걸었다.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벽화에 쓰인 김광석의 에세이를 읽었다.


‘서른 즈음에’를 쓰고 불렀던 김광석은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른 무렵에는 상실감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른이 되면 이십 대의 가능성들은 대부분 좌절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재미있거나 신기하지 않습니다.”


김광석은 이렇게 말했다.


‘서른은 인생의 전환점이자,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때’라고.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며 살아야지 다독이면서도 스스로 한계들을 느끼면 답답해진다’고.


그랬던 김광석은 겨우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김광석의 죽음이 남달랐다는 것을 들었지만,

이렇게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그 많은 명곡을 남기고 겨우

 서른두 살이었다니!


김광석의 노래를 깨달을 즈음 나는 서른이었고,

김광석의 짧은 인생을 알게 된 것도 서른이었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통해서.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몰라도 된다.’고 여겨왔다.

‘서른을 알기엔 난 아직 어리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편견으로 나는 보호되고 있었다.

세상을 좀 더 아는 것으로부터.

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그로 인해 겪을 수도 있는 아픔과 상처들로부터.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김광석의 삶과 죽음을 알게 되면서

나의 안온하던 연못에 파문이 일었다.

어쩌면,

내가 알껍질을 하나 깨고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살다가 서른두 살에 죽게 된다면?’

김광석만큼 깊은 작품을 남길 수 없을지라도,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내 인생 아닌가.


복잡 미묘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깨닫는 걸 뭐라도 남겨야 한다.  

'더 나중에, 더 나은 사람이 되면...’하고

미루면 안 된다.

아직 그 순간의 나는 없다.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서른두 살에 죽게 된다면.


그래서 나는 뭐라도 쓰기로 했다.

매일매일이 ‘인생의 전환점’같이 느껴지는 서른을.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서른을.

내가 나를 세워가야 하는 이 서른을.


남겨두고싶다.

내 한계를 알아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에 대한 성찰을 하는 서른을.

서른두 살이 되어 돌아보았을 때,

찬란할 수도 있는 이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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