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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6. 2019

서른의 책임

<서른 랩소디>

나는 올해 서른 살이다.

이십 대 후반에는 어정쩡하게 나이가 많은 느낌이라 빨리 서른이 되었으면 했다. 그럼 삼십 대의 연륜이 생길 것이고, 좀 덜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 더 빡세다.

현실은 내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간다. 서른이 되었다고 어디선가 갑자기 없던 수준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 깨닫는 나이다.

올해 들어 군인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독서교육을 장려하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여자’ 강사인 내가 어쩌다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군인들이 풋풋하다 느껴졌을 때, 문득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잊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선생님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새로운 교생들이 왔다고. 교생들의 나이가 많아봐야 스물셋, 넷이라고. 이번에는 약간 더 강하게 내 나이의 무게가 다가왔다.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고. 요즘 누가 나이 따지냐고. 생각하면서 ‘얼른 제대로 된 직장 구해야지’, ‘결혼 안 하냐’는 잔소리에도 끄떡 없었는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사회에 많은 책임을 나눠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 나이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물론 사회의 책임에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동생들, 후배들의 눈빛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나도 아직 철이 없는데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나에게서 다름을 본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렇게 고민하며 몇 개월이 흐르면 서른한 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서른두 살, 세 살 먹어가며 ‘서른’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조금 더 다를까?

‘나이 먹는 거 별거 없네’
‘나이 들면 자연히 철들 줄 알았는데 그대로네’  
어찌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을 쉽게 하면서 내 책임을 회피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종종 나는 서른의 책임을 다할 수가 없다.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을 분별하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인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심지어 내가 왜 갑자기 기뻐졌다가 또 갑자기 우울해지는 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서른의 책임을 지울 때면 분노가 치밀고, 아주 가끔은 자책으로도 이어진다.

오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을 마구 밀며 지하철에 오르는 할머니들을 보았다. 밀린 사람들 중에 나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다 알만한 어른들이 왜 이렇게 무례할까’
이게 바로 나다. 내 책임도 모르면서 남의 책임을 따지는 사람.
그 할머니는 어른의 책임을 모르는 사람이고,
나는 나도 어른이라는 걸 모르는 서른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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