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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24. 2024

행복으로 향하는 문은

story 16. 까짓 거 하나 만들면 되는 일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하잖아, 살아보니 그게 인생이더라고.
 하물며 그렇지 않다고 쳐, 까짓것 직접 문 하나 만들면 되지.
이러니 우리네 인생이 얼마나 멋져?

2019.10.28 (08:00) Hornillos del Camino - Castrojeriz (13:30) (20km)


사람들과 함께 출발했으나 걸음이 느려 자연스럽게 혼자 걷게 되었다. 평평하고 탁 트인 길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있었다. Brugos에서 Astroga까지는 '마음의 길'. 사색에 방해될 것 하나 없이 밀밭과 보리밭이 길 양 옆으로 넓디넓었다. 발 밑에서 구르는 잘은 돌멩이들이 자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돌멩이는 왜 이름도 돌멩이인가. 그 옆으로 개미들이 빨빨대며 지나갔다. 개미는 또 왜 개미인가. 나를 어딘가 멀리에서부터 본다면 한 마리 개미처럼 보일는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개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내 땅을 보며 걷곤 했다. 세상일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제 규칙에 따라 물결처럼 흐르는 개미들이 위로가 되어서. 작은 존재들을 밟지 않으려 땅을 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이리저리 구부러진 마음이 나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꼭 헛헛한 마음이 부지런히 채워지는 듯도 싶었다. 자연 안에 살아있는 것들은 어찌나 저리도 정직하고 이례적이지 않은 것인지. 한 번도 변명을 않고 살아있음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인지. 개미들의 삶은 오늘 나의 풍경이 되었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겐 풍경이 되듯이.

'마음의 길'이라는 명색에 걸맞게 드넓은 길이 펼쳐져있다.
풍경이 되어버린 어떤 이의 염원들은 지금쯤 이루어졌을까

순례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돌탑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돌탑을 쌓으며 어떤 생각들을 빌었을까. 돌탑은 어제고 오늘이고 그 자리에 쌓아 올려지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돌멩이들에 염원이 주어지면 그것이 곧 저들의 이름이 되려나. "안녕, 난 오늘 새로 온 신입 돌멩이야. 내 이름은 '사랑하는 부모님이 아프지 않고 항상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 해." 그렇게 인사를 건네면 저 밑에 있던 돌멩이가 대답하려나. "어서 와, 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서동독일 통일을 염원합니다'라고 해." 돌탑에 깔린 돌멩이들 하나하나 염원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특하기 짝이 없어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Iglesia de la Virgen del Manzano
Monasterio de San Antón

푸르게 펼쳐진 밀밭을 지나 일제히 길을 따라 정렬된 가로수 길까지 걸으며 간간히 나무 그루터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걸터앉아 젤리를 꺼내먹었다. 열렬한 가톨릭의 나라답게 지역마다 성당의 규모와 분위기도 다른 것이 흥미로워 어디든 둘러보고 싶었기에 Castrojeriz에 도착하고서도 곧장 성당으로 향했다. 더구나 Castrojeriz에 있는 Museo de la Colegiata de Santa María del Manzano는 성당뿐 아니라 역사적 유물까지 보관하고 있어 박물관을 겸한다고까지 하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가진 가치에 비해 방문자가 뜸한 것인지 방문객은 나 하나뿐이었다. (혹은 이미 모두들 다녀 갔는지도 모르겠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한산한 기운이 훅 몰려왔다. 작은 창구에 앉아있던 노인이 날 발견하고는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스페인어로 몇 마디 인사를 나눴더니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나를 붙들고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쏟아냈다. 얼마간을 무료히 앉아있었기에 이리도 달가워하는가. 한 명의 손님을 위해 창구를 비워도 될 만큼이나 한갓진 모양이었다. 다소 부담스러웠던 성당 투어가 끝나고 출구로 나설 때까지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배웅하기에 떠나는 발걸음이 미안도 싶었다.

Castrojeriz 안내서. 정교히 잘 그려놓았다.

오늘의 숙소는 8유로짜리 알베르게. 값이 싼 편은 아니지만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이라기에 호기심이 앞섰다. 체크인을 할 때 난 분명 5유로짜리 지폐 한 장과 2유로짜리 동전 두 개, 그러니까 9유로를 건넸는데 잔돈이 돌아오지 않는다. 잔돈을 요구하자 8유로를 냈다는 그의 고집에, 이미 뒤섞여버린 동전들 사이 내 이름 적어놓은 것도 아닌 데다 짧은 스페인어로 증명할 길이 없어 그만 관뒀다. 마음에 묻어둔 1유로도 1유로지만 8유로를 내고 거스름돈을 요구한 꼴이 되었으니 그게 더 마음이 쓰렸다.

Castillo de Castrojeriz 성 위에서 바라본 전경, Castrojeriz 초입새가 보인다.
Castillo de Castrojeriz 뒤편의 전경

동네를 지나다 만난 소영 씨와 함께 치킨팝과 감자튀김을 시켜 맥주를 마셨다. 요기를 마치고 숙소에 다시 돌아와 씻고는 뒷산 꼭대기에 남아있는 오래된 성으로 향했다. 20km를 걷고 나서 또 산을 오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이왕 오르기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 싶었는데, 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후회할지조차 가늠하지 못했겠구나 하고 드는 생각이 아찔할 만큼 전망이 실로 엄청났다. Castrojeriz 지역의 모든 경치가 사방으로 내려다보이고, 산들바람이 불고, 부드러운 해가 비치고, 높은 하늘은 맑디 맑았다. 노래를 들으며 성이 부서져 나간 모서리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바람을 느꼈다.

Castillo de Castrojeriz 정상으로 향하던 길

조금 더 올라보려고 돌계단을 올랐는데 그 비좁은 통로가 꼭 천국으로 가는 길만 같다. 이렇게나 전망이 좋은데 왜 나 혼자 뿐인지 의아하던 차에 누군가 올라오는 기척이 들렸다. 잠시 후 나타난 그는 자신을 '아르투로'라고 소개했다. Castrojeriz에서 나고 자란 그는 호텔에서 매니저로 일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였는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오래된 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옆에 한참 동안 앉아 귀를 기울였다.


슬슬 바람이 차지고 배가 고파오기 시작해 성에서 내려와 슈퍼마켓으로 갔다. 초코볼과 귤, 저녁으로 먹을 간단 식품을 사서 돌아와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고는 쉬고 있는데 같은 숙소에 머무는 알리시아(멕시코에서 온 중년의 여인)가 급히 부른다. 호스피탈레로 (Hospitalero, 순례길 위에 있는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호스트가 아닌 호스피탈레로라고 불린다. 이유인 즉 'Hospital', 그러니까 현재는 병원을 뜻하는 이 단어는 아주 과거에 순례자를 수용할 수 있는 숙소를 뜻하기도 했기에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데 혼자는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왜인지 모르게 한껏 들뜬 호스피탈레로를 따르자니 아까 뜯긴 1유로가 눈앞에서 아른거려 숙소에 있겠다고 대답했지만 알리시아가 암소의 눈망울을 달고 그렁그렁 바라보는 탓에 결국은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주의 : 뒤에 나오는 사진들은 할로윈 소품으로써 꾸려졌으나 다분히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으므로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는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히 보면 무척이나 엉성하나 핸드폰의 좋지않은 화질이 미친 리얼리티를 구현해냈다.
숙소 지하실에 꾸며져있던 할로윈 파티. 머리가 저기서 떨어져서 저기에 매달렸는가...

호기에 찬 호스피탈레로를 따라 내려가니, 할로윈을 맞아 손수 꾸며놓은 공포물들이 한가득 잔뜩 꾸며져 있다. 깨름찍한 분위기에 잠시동안 놀라긴 했지만 손수 하나하나 저 투박한 몸과 손으로 매달고 묶고 칠했을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두 걸음마다 돌아서서 우리의 표정을 살피는 그의 눈썹이 한껏 올라있다. 칭찬을 기다리는 큰 대형견처럼 눈동자는 또 어찌나 반짝이던지. 할로윈 따위를 즐기지 않는 나였지만 싫은 티도 채 낼 수 없었다. 정성껏 준비한 소품들은 둘째 치고서라도 300년이 지난 건물의 명색에 맞게 벽돌과 문턱 하나하나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석조 건물 특유의 냉랭한 한기가 도는 데다 할로윈 분장까지 더해져 더할 데 없이 을씨년스러웠다.

할로윈 행사 끝에 기도실이라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요.

계속해서 아래로 향하니 그 밑 지하엔 기도실이 있다. 지천을 떠도는 유령과 목 잘린 시체를 펼쳐놓은 투어의 끝이 기도실이라니. 맹랑하기도 하지. 차마 기도실만큼은 건들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짧은 할로윈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세 명뿐인 혼성 숙소에 한 남자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양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후 그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항상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태도에 악의만 불어났다. 순례길 위에서 누군가를 멀리하는 마음을 달고 있는 것은 퍽 어울리지 않는 일인 걸 알지만 그의 코골이는 견줄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둥그런 뒤통수가 보이면 뒤를 밟다가 그가 들어서는 알베르게를 피해 가곤 했다.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고 친한 이 하나 없었기에 우린 그를 이름 대신 '감자'라고 불렀다. 미안, 감자씨.) 3시부터 와인 한 병을 모두 비우고 자고 있다는데, 기이할 만큼이나 희한한 사람이다. 코를 저렇게 고니 오늘밤 잠은 글렀다.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를 옆에 두고 알리시아와 나는 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쩌다 순례길에 올라 여기까지 떠나왔는가 묻는 그녀의 질문에 사람이 힘들어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대답하니 그녀가 말한다. 'Look JJ, 잘 봐.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견디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 그렇지 않아?' 그녀는 나의 눈동자를 살피며 말한다. 나는 맞다고 대답한다. '우린 모두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잖아. 그렇지 않아?' 그녀는 또다시 그렇지 않으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맞다고 대답한다. '걱정 마.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해. 살아보니 그게 인생이더라고, 하물며 그렇지 않다고 치자. 넌 아직 어리니까 까짓것 직접 문 하나 만들면 되지. 인생이 얼마나 멋져? 맞잖아?' 그녀는 그 말엔 그렇지 않냐는 말 대신 맞지 않냐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을 되새기다 모두 잠든 밤에 누워 감자씨의 코골이에 묻히는 혼잣말로 읊조렸다. 당신이 옳아요 알리시아. 누구나 인생은 즐거워야죠. 인생엔 견디는 일보단 즐거운 일이 많아야 해요. 우린 모두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야지요. 당신이 옳아요 알리시아. 난 평생 내 문을 만들며 살아갈래요.


Question 16. 만 25세가 된 기분이 어때?

한국은 만 나이가 낯선 탓인지 별다른 감회는 없다. 또 한 해의 생일이 지났구나. 2020년에 27살이 되면 더욱 본격적으로 한 살을 먹을 테니 그때 다시 묻도록 하자.라고 이 날의 일기엔 적어 두었으나 현재 만 29세가 된 기점으로도 나이가 먹을 때마다 별달리 무언가를 깨치거나 세상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 거나한 것 같진 않다. 그저 해가 바뀔 때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온다면 '스물 넷이요, 아 아니 스물다섯이요.' 따위로 대답하는 법을 배운다. 년도를 적는 란에 무심코 전년의 해를 적고는 끝의 숫자를 교묘히 바꾸는 법을 배운다. 해와 달이 도왔으나 일도 월도 년도 사람이 정한 규칙이 아닌가. 사람들은 왜 이리도 나이 먹는 것에 강박을 느끼곤 할까. 한 해가 지났으니 잘 살아야지, 나이를 먹었으니 좀 더 성숙해야지 하는 것들. 혼자였다면 아무 상관없었을 노화라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나이 들게 한다는 데에 그 아픔이 있는 듯하다. 조금씩 끝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럼 우린 그 기점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차오르는 나이에 구시렁대고 있는가, 혹은 떠나가는 것들에 더욱 마음을 떼어내며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쉬운 마음은 아니겠지만 후자이길 바라본다. 차오르고 비워지는 달빛의 모양을 매일마다 보살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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