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_Welcome to Vientiane Capital
여기는 좁아터진 비행기 안.
단절되고 유예된 자유의 시간.
'낭만? 낭만은 개뿔.'
아무리 반대편으로 찌그러져도 옆사람이 팔을 휘저을 때마다 나의 오른팔을 쓸어대고 뒷자리 머리 뚜껑 열린 할아버지는 5분에 한 번꼴로 거진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품을 해댄다. 발길질은 나만을 위한 특별 안마 서비스. 이스탄불까지가 11시간, 프랑크푸르트까지가 13시간이었던가. 라오스 비엔티안까지 6시간도 채 안 하는 비행시간은 그에 비해 반절도 못되는데 옆사람과 스킨십을 나눌 수 있는 좁은 좌석 덕분인지 우렁우렁한 어르신들 덕분인지 어째 곱의 곱절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뭐, 붙잡아 매어놔도 지나가는 시간이라지. Welcome to Vientian Capital.
비행기를 나서자마자 코끝을 덮치는 후덥한 공기. 후읍, 하고 큰 숨을 들이쉰다. 뻑쩍지근한 몸통 안으로 공기를 가득 채우고는 3초를 참는다. 쓰다 버린 편지지처럼 구겨진 몸을 차례대로 뻗을 때마다 관절에서 오독오독 소리가 난다. 순조로운 입국 절차를 마치고 도떼기 시장을 방불캐하는 수취대에서 반가운 짐짝을 다시 찾고서는 작은 돈을 환전했다. 피부에 달라붙는 습기 어린 공기가 정겹다. 동남아 특유의 살큼한 냄새도 좋다. 나를 이국의 여행자로 만드는, 땀과 향과 삶이 섞인 그 달고 축축한 냄새.
택시를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장 퍼져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경차가 쿨쿨거리며 다가온다. 굴러가는 게 용해보이는 차의 번호판이 내가 부른 것과 꼭 맞아떨어지자 이마를 짚고 싶었지만, 한쪽은 어디 가고 없는 짝 잃은 앞니로 해맑게 웃으며 내 짐을 낚아채듯 가져가는 기사의 얼굴을 보니 마냥 그럴 수만은 또 없다. 에어컨에선 곧 기침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쿰쿰한 냄새가 스며 나왔고 기어를 바꿀 때마다 울컥거리며 어디 처박는 소리가 난다. 돈 벌어 이도 차도 안 고칠 거면 도대체 어디에 쓴단 말인가. 아, 벌써 재밌어 죽겠다. 하나 빠진 앞니와 삐걱대는 자동차로 달리는 라오스의 밤.
새벽 한 시,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 새벽 세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예약한 호스텔에 도착했다. 리셉션 앞에 라꾸라꾸 펴놓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직원을 깨워야만 했다. 곤한 잠을 깨운 터라 불편한 기색을 각오했건만 그런 건 안중에 없고 반쯤 감긴 눈으로 내 체크인을 도울 뿐이다. 나였으면 오만상을 쥐어짜고도 남았겠구만. 그뿐인가, 내 몸무게의 4분의 3 정도 될까 말까 비쩍 말라서는 뭐 언젠가 같이 겸상이라도 하게 되면 모든 반찬을 앞으로 밀어주고 싶은 연민의 마음이 절로 드는데 15kg이 육박하는 나의 캐리어를 한 손으로 들고는 사람 하나 지나갈만 한 좁은 계단을 4층까지 올라 나의 침대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팁이라도 건네려 지갑을 찾는데 그 사이 쌩하니 내려가버리곤 없다. 암, 만국 공통의 진리, 돈보단 역시 잠이지.
예약한 숙소는 비엔티안의 Heavench Hotel.
Hotel. 믿거나 말거나.
짐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고 보니 수중에 물 한 방울이 없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가는데 문을 연 편의점이 있을까 싶었지만 완전한 기우다. 편의점은 물론이고 타워맥주를 파는 펍과 국수를 파는 노점상까지 건재히 문을 열고 있었으니까. 물을 사러 나간 길로 허기진 배를 달랠 겸 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지난주부터 앓았던 감기에 장거리 여행까지 맞물려 칼칼하게 부어오른 목구멍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도 싶었다. 장장 12시간의 이동에 온 세상의 먼지를 덕지덕지 달고 도착한 터라 샤워가 간절하다. 눅눅한 화장실은 모기 소굴이라 볼일을 보면서도 다리를 털고 온 난리춤을 춰야 했고, 샤워기는 강아지 오줌발같이 질끔거리는 덕에 오래 씻어야만 했지만 씻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충분히 되었다.
그러면 됐지 뭐.
왜 뭐 어때, 재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