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4_여전히 루앙프라방
서두를 필요 없어.
메콩강도 느리게 흐르잖아.
루앙프라방이 언제부터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지.
"자, 자! 여기 주목하세요! 안내사항 전달합니다!"
밴치 위에 올라 목청껏 안내사항을 전달하는 한국인 가이드와, 삼삼오오 모여 듣는 둥 마는 둥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들과, 그런 아저씨들을 닦달하며 일행을 놓칠세라 애면글면하는 아줌마들. 어느 여행지를 가던지 그 문화를 최대한 관망하고 흠씬 즐기고 싶은 나로서는 한국인이 퍽 반갑지만은 않다. 큰 소리로 소리치는 모국어가 귀에 익은 탓도 있으리라. 대기 중이던 밴은 패키지 어르신들께 모두 뺏겼고, 끝에 남아있던 밴이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인상 좋은 기사 아저씨가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묻는다.
"씨띠 쎈떠?"
고개를 끄덕이며 얼마냐 물었더니 이십만 낍, 만 사천 원이란다. 어림없는 소리. 모르긴 몰라도 루앙프라방 기차역에서 시내까지는 사만 낍(삼 천 원)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 학을 때며 혀를 내두르자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는 표정으로 얼마면 되겠느냐 묻는다. 알던 대로 사만 낍을 불렀더니 오만 낍에 해주겠단다. 이 양반은 뚝심도 낯도 없나. 이십만 낍이 오만 낍으로, 한 마디의 말로 반의 반 절의 가격이 되는 마술이다.
내리쬐는 뙤약볕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만 낍 정도야 흔쾌히 양보를 하고 밴에 올랐다. 기차역 출구를 따라 10미터 즈음 더 가서 라오스 현지인들로 보이는 여자들을 태우려 (나에게 했던 것처럼) 창문 너머 호객행위를 하는데, "삼씹", "시씹" 하며 흥정 중이다. 아저씨는 몰랐겠지. 내가 태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걸. 라오어와 태국어는 서로 사촌지간 되는 언어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웃나라의 숫자는 으레 비슷하기에 삼씹과 시씹은 각각 30과 40을 의미하는데, 그들은 40을 놓고 경쟁 중이었지만 나는 초장부터 "하씹", 그러니까 50이었던 거다. 무너지는 어이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저항 없이 실실거리며 아저씨에게 묻자 에라 모르겠다 그냥 웃자, 하며 같이 웃음이 터진 아저씨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그래 너도 40"을 해 보였다. 나의 승리다. (20만에서 5만으로, 5만에서 4만으로 쟁취한 나의 승리는 같이 동승한 누구보다 싼 가격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제 자리를 찾았을 뿐이었다.)
숙소 주소를 확인하려 앱을 켰는데, 무슨 일인지 내 예약은 온데간데없고 덩그러니 'Canceled(취소되었다)'는 안내문뿐이다. 당장의 목적지를 잃은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 우선은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이라도 해볼 생각으로 예약이 취소된 숙소로 향했다. 청소를 하던 여인이 내 상황을 전해 듣고는 '앤디'를 불러준단다. 미루어 보아 숙소 주인장 이름이 앤디인 듯했는데, 한참을 있다가 나타난 그 조차도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비어 있는 정수리만 비벼댈 뿐 나의 사라진 예약에 뚜렷한 이유나 수를 찾지 못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급히 예약하고 찾아가야만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내 통장 잔고가 부족해 결제가 되지 않아 생긴 문제였다. 앤디 미안.)
차선이었으니 기대랄 것도 없었는데 숙소 외관이 훌륭하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조화로운 루앙프라방이니만큼 목조건물의 분위기가 흠씬이다. 순박한 리셉션 직원이 맞아주었고, 방은 준비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로비에 있는 맥주 한 병을 비우고 있으니 방을 안내해 줬는데, 내가 찾던 욕조와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인생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니까.
숙소에 짐을 풀고 금세 끈적해진 몸을 씻어냈다. 잠깐 누워 쉬다가 투어 예약과 생필품 구매를 위해 길을 나섰다. 구글에서 미리 찾아두었던 만달라오 코끼리 투어. 코끼리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생활에 맞추어 진행되는 투어로, 소규모로 진행되는 지역 사회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한다. 150달러, 20만 원을 육박하는 투어 가격에 입이 떡 벌어졌지만 뭐 어쩌겠는가. 직원이 날 설득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예약은 했을 테지만, 투어 금액의 50%는 새로운 코끼리를 구출하고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동물보호단체로써의 운영자금으로 쓰인다고 자긍심에 반짝이는 눈빛을 쏟아내며 설명하는 그를 뒤로하고 갈 수도 없었다.
예약을 마치고 슈퍼마켓으로 가려다, 허기진 배를 채우러 노점상이 늘어져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파리를 쫓는 간이 프로팰러는 맥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상인들은 저녁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 추세였다. 한 두 개의 꼬치만 전시된 채로 무료히 바나나 잎을 주욱 주욱 찢는 사람들 사이로 5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아이가 야무진 손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닦고 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테이블은 깨끗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게까지 실어가며 보란 듯 닦아준 정성이 고마워 닦아준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소시지 두 꼬치와 찰밥을 하나 시켜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고 뜨거운 소시지는 입 안에서 정신없이 굴러다니는 탓에 맛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슈퍼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널목 사이 남루한 옷을 걸친 꾀죄죄한 여자아이가 작은 바나나를 앞에 둔 채 철푸덕 엎드려 미동도 없다. 숨은 쉬는 걸까 싶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본 아이의 고개가 반대방향으로 돌아가있어 괜한 걱정이었구나 싶었다. 그 아이 건너편, 햇볕이 무자비하게 내려앉은 거리 모퉁이엔 비슷한 바나나를 놓고 앉은 중년의 여자가 있다. 고된 인생이 얼굴을 관통한 흔적이 역력한 탓에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어린 나이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내가 봤을 때는 그랬다. 그녀는 서양인 부부에게 바나나를 담아주면서도 건너편의 어린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겠지. 일요일의 어느 뜨거운 오후에 아이에게 그늘을 내어주고 그 뙤약볕에서 앉아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벽의 틈 사이로 피어나는 삶, 충분치 않아도 피어나는 부겐빌리아의 고향.
시간은 흐르고 찾는 이들이 변했어도 이곳은 여전히 루앙프라방이다.
찰나를 사는 여행자와
영원을 지나는 어느 모녀와
피어나는 부겐빌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