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6_루앙프라방의 새벽 탁발
'知足者雖臥地亦安, 不知足者雖處天堂亦不稱意'
만족을 아는 이는 비록 땅 위에 누워도 편안하고,
만족을 모르는 이는 천상의 궁전에서도 불만에 찬다.
- 불유교경(佛遺教經) 中
찬 바람이 싫어 에어컨을 낮춰놓고 잠들었는데 습한 공기와 끈적이는 이불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이다. 오늘은 며칠간의 지친 몸을 쉬게 해 주려 푹 잠들어보려 하였으나 정신이 말짱하다. 탁발식에 가볼까 싶었지만 그러기에도 아직 이른 터라 다시 눈을 감았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뒤척이다 끝내 일어나 앉았는데 한 시간뿐이 지나지 않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오히려 개운한 정신에 약간 당황하다, 기왕 잠도 달아나버렸으니 탁발식에 나가볼까 하고 세수도 하지 않고는 거리로 나갔다.
탁발은 불도를 수행하는 스님들이 걸식하여 생계를 잇는 고행의 과제다. 특히 루앙프라방은 인구수에 비해 승려의 수가 비교적 높고, 린쌍 왕국 왕조의 역사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만큼 탁발로 새벽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어깨에 발우를 메고 이른 꼭두새벽 거리로 나와 곳곳에 행렬을 이룬다.
여기저기 목욕탕 의자가 한 줄로 깔려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노승과 동자승이 섞여 줄을 서서 걸어가고 있다. 탁발식에 참여할 생각으로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보리과자를 품 앞에 내려두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서는 서서히 다가오는 승려들을 발표 차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두 손에 과자를 쥐고 지켜본다. 아무리 동자승이라도 세속을 떠나 진리를 좇는 존재이기에 고행을 따르고 있음은 알겠으나, 불도와 거리가 먼 나에겐 스님이기 전에 아이로 보이는 법, 내 허리깨도 오지 않는 작은 아이들이 내어놓은 한쪽 어깨와 맨발은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 모든 불교의 교리를 터득한 승려들의 얼굴에서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 따위를 기대했지만 그저 종교적인 의식보다 문화의 하나로, 그러니까 외국인들의 관망의 대상이자 어떠한 피사체의 모습으로 그 인식이 굳어진 듯한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침울했고 무거워 보였다. 기실 그들의 표정보다야는 아침 공양에서 얻는 음식으로 하루의 식사를 해결하고 그마저도 녹록지 않으면 굶게 되는 인고의 수행자들을 앞에 두고 카메라를 들이밀고 시시덕 농담을 던지는 관광객들 때문에 못내 씁쓸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구경거리로 여기는 몰지각한 이방인들의 태도를 견디며 그들은 또 다른 수행을 하고 있으려나.
이 또한 그들의 문화임을 존중해야 하기에 찰밥과 봉지과자가 뒤엉킨 발우함에 내가 들고 온 과자를 열심히 나눠 넣었다. 긴 행렬은 마지막 세명의 동자승을 남겨두고는 문득 일렬로 서더니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그 하고많은 사람 중 왜 굳이 양옆이 텅텅 빈 내 앞에 주르르 서서 의례를 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황한 나는 3초쯤 멍을 때리고 있다가 양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내려놓고 합장을 했다. 그래도 명색이 기독교인인데 불심을 표하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들 앞에서 기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무심한 듯 염불을 다 외고는, 미처 나의 과자를 받지 못한 동자승 세 명이 다시 내 앞으로 몰려들어 어깨에 걸친 발우함을 들이밀었다. 염불의 여운과 당황스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급하게 남은 과자를 챙겨 함 안에서 쌀밥과 조금 떨어진 곳에 넣어주었다. 작은 리듬을 따라 외던 염불의 뜻을 알 길이 없고 나조차도 참여하고자 했던 목적이 여느 관광객과 달랐다고 볼 수 없으나 마음속 깊이 어떠한 감동이 몰아치는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거리에 잔상처럼 남은 주황색 장삼의 행렬들을 조금 더 지켜보다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 더 잠을 청한 후에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5년 전 루앙프라방 메콩 강 옆 카페에서 먹었던 샌드위치 맛이 잊히질 않아 이름 모를 카페를 사진 한 장의 단서만 들고 백방으로 찾았건만 비슷한 울타리 하나 찾지 못했다. 울타리야 보수 공사를 했을 수 있다 쳐도 엇비슷한 분위기에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가 없는 듯했다.
아쉽지만 항상 느낀 바 ‘차선이 나을 때가 있다’는 교훈을 앞세워 샌드위치를 파는 식당엘 들렀지만 퐁신한 빵 안에 끼워 넣은 베이컨과 치즈가 빈약해 만족하기엔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그래도 역시나 흐르는 메콩 강변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노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고, 앞 테이블에 앉은 서양인 여자 두 명이 뭐가 그리 서러운지 계속 눈물을 흘려가며 열변을 나누기에 흘깃거리며 그 요동치는 감정을 구경 삼았다. 탁발식으로 하루를 열었으니만큼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하루를 보내보기로 한다. 어쨌거나 내가 만나는 것들이 나의 여행이 되어줄 것이므로.
발우함에 담긴 타국의 봉지과자와
이들 삶에 묵어가는 이방인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