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런치 작가 신청 접수를 완료하고 3일 정도를 긴장되지만 긴장하지 않은 '척' 초조하지만 초조하지 않은 '척' 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토요일.
'브런치 작가가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메일을 받았다.
'나도 작가다'의 1차 공모전부터 공모해 보고 싶었지만 첫 번째 자격요건이 브런치 작가만 공모가 가능하다는 것에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며 도전해 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속에 간직된 일들과 책 속의 문구들을 결합하여 꾸준히 써 내려간 글들 중 3개를 추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 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쁘게도, 한 번에 작가 등록이 되었다.
어찌나 기쁘고 가슴 설레던지. 브런치 작가 등록이 되자마자 바로 '나도 작가다'3차 공모전에 접수하였다.
내 인생 마흔이 넘은 나이에 가장 나답고 나를 오롯이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사건인 것이다.
나의 이름은 내가 부를 것이니
학창 시절엔 하이틴 소설이나 순정만화를 좋아했고 20대엔 시집에 빠져 살았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들은 이팔청춘인 나의 가슴을 떨리게 했고 감성 충만하게 해 주었다.
30대엔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 책들을 주로 읽으며 '아, 지금처럼 계획 없이 생각 없이 살다 간 미래가 남아나지 않겠구나'라는 위기의식에 무엇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무엇 중 30대인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다른 이들이 먼저 간 길을 바라보며 그래도 안정적이라 생각한 '결혼'을 택했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애주기를 맞이하며 살아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나름 먼저 결혼한 다른 이들의 삶을 보며 항상 만족할 순 없어도 행복한 듯 보였다. 나의 결혼생활도 그러리라 생각하였지만 우린 신혼초부터 삐걱거렸다. 친정과 시댁문제, 출산과 양육문제, 각각의 생활방식과 성격차이등 무엇하나 서로 맞는 것도 맞추며 사는 것도 힘든 나날이었다. 그러다 마흔이라는 시점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그 이전 결혼생활 시작부터 느껴왔지만 그저 내 생각이 과민한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며느리의 삶은 '가부장제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젊은 날 무수히 읽어왔던 많은 시집과 자기 계발서, 에세이집은 이런 '서글픈 깨달음'을 주지 않았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이 아름다운 시구가 나에게는 '나의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수동적인 삶은, 살고자 거부했다.
끝없이 생각하고 읽고 기록하였다. 그 결과 마흔의 나이에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페미니즘을 만났다.
여성주의, 여성학자들이 써 내려간 페미니즘의 내용들은 나에게 낯설어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듯하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열심히, 성실하게 잘 살아내고 있던 나는, 없었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별로 '자연스럽지' 않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후반부에 지영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저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가끔 행복하기도 해요.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요"라고.
출구를 잃어버린 기분.
매 순간 매달리는 가사는 오롯이 나의 것만이 아니다. 그 나만의 것도 아닌 일들에 내 온 신경과 에너지를 쏟고도 나는 완전한 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며느리' 일뿐.
정희진 여성학자는 말했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별로 '자연스럽지' 않다'라고. 지금의 사회는 '여성은 성역할에 충실했을 때만 사회 성원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엄마'가 '아내'가 되기 위해서만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나의 다양성 중 일부 일 뿐이다.
나의 내면엔 엄마와 아내가 되기 이전의 오롯한 나 자신이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인 지영이가 행복한 표정으로 글을 쓰며 끝을 맺는다.
그 장면이, 주인공이 참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도전해 보았고, 그 도전에 화답이 왔다.
가부장제라는 어두운 허울에 갇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브런치가 나에게 출구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 출구 밖 세상 속으로 빛을 향해 뚜벅뚜벅 힘을 주어 걸어가 보려 한다.
마흔이 넘어 첫걸음마를 떼듯 '나'로부터 생각하고 '나'를 위해 글을 쓰며 '나'답게 살기 위해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