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추석? 그게 뭐예요?"

추석명절 전야제 하고 온 며느리입니다.

by 미리내

어느 집이나 비슷하겠지만 나의 시가도 추석을 앞두고 2~3주 전에 벌초를 하며 명절맞이 준비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에게는 추석 전야제가 있다.

시가는 추석 연휴 1주일 전 시조부모님의 제사를 지낸다. 추석 전의 제사는 명절 노동의 워밍업으로 자연인이었던 나의 정신세계를 며느리 세계 명절 모드로 중무장시켜 놓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제사와 추석 날짜를 확인하며 손으로 세어본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1주일의 차이.

그렇게 며칠 전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댁에 갔다. 당일 아침 시어머니와 전화 통화하며 오후에 갈 예정이니 혼자 하지 마시고 같이 준비하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도착하니 이미 거실에서 혼자 전을 부치고 계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체 없이 일할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내 몸은 전 부치기 모드로 자동 전환되어 어느새 손에 뒤집개를 쥐고 있었다. 둥근 채반에 여러 종류의 전이 자리를 차지할수록 내 어깨와 허리는 뻐근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전을 부치며 거실을 감싸고 있는 고요를 깨 보고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어머니, 뉴스 보니 올해는 '렌선 추석, 렌선 차례' 지내는 집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둘째가 "엄마, 그게 뭐예요?"하고 묻는다.


"응, 그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추석에도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서 온라인으로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는 걸 얘기하는 거야"


대화를 무심한 듯 듣고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우리는 거리두기 할게 뭐가 있냐. 다들 가까이 사는데."


순간, 어깨와 허리 통증보다 더 참기 힘든 음소거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벗어나기 힘든 '며느라기'의 굴레

그렇다. 해마다 명절이면 고속도로 정체로 '귀성전쟁' '귀경 정체'를 걱정하지만 우린 '그게 다 뭐예요?'라고 할 만큼 관심 밖의 일이었다.

큰 며느리인 나는 시댁을 걸어서도 오고 갈 만큼 지근거리에 살고 있으며 작은집은 차로 30~4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살고 있으니 다들 가깝게 모여 산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거리두기를 방심할 때 코로나 19가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시어머니께서 모르실리 없다. 다만 질문 속 랜선 추석의 뜻이 탐탁지 않으셨는지 그나마 대화를 시도한 며느리의 수동적인 언어에 대화 단절용 멘트를 쓰디쓰게 날리셨다. 할 말 안 할 말 구분하느라 고구마가 되어버린 며느리의 언어와 거칠 것 없는 진격의 시어머니표 한약 멘트는 가까워질 수 없는 고부간의 사이만큼이나 참으로 부조화스럽고 껄끄럽다.


제사 준비가 한 가지씩 마무리되고 저녁시간이 되니 남편과 작은집 식구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서둘러 제사 준비를 하며 시어머니는 제기에 음식을 담아 주고 남편은 제사상에 '홍동백서', '어동육서'에 맞춰 음식을 놓았다. 그 모습을 보시던 시어머님은 그런 아들이 듬직하셨던 모양이다.


"아이고, 우리 아들. 수고했네" 하시며 살가운 눈빛과 웃음으로 큰 아들의 등을 쓰다듬으셨다.


제사 후 늦은 저녁을 먹고 주방정리를 마친 후 귀가를 위해 서둘러 대문을 나섰다. 그런 내 등 뒤로 시어머니의 "수고했다"라는 한마디가 들렸다. 그런데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제사 준비로 고단했던 시간보다 '수고했다'는 이 한마디가 내 심신을 더 힘들고 무겁게 했다. 왜 였을까? 며칠이 지나도록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안방의 제사상에 한상 가득 차려진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과 그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후줄근해져 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대접받는 풍습.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열심히 했는지.

'현타'란 이런 것인가.

순간 며느라기 생각이 났다. 수신지 작가의 웹툰에 나오는 그 '며느라기'.

'시댁에 예쁨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시기인데 사람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는 그 무서운 주문 같은 며느라기.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며느라기 굴레를 결혼 16년 동안 아직도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작가 수신지


며느리의 노동가치는 언제나 '0원'

시어머니는 다 만들어진 음식을 제사상에 갖다 놓는 아들의 존재만으로도 흐뭇해하며 바라보셨다.

그러나 제사 준비로 고된 하루를 보낸 며느리에게 건네던 그 한마디는 같은 마음이지 않았다. 시가 안에서 며느리는 '노동의 주체자'가 되어 움직이지만 그 노동가치는 언제나 '0원'이다. 그러기에 수고로운 노고보다는

당연한 노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시어머니의 상반된 행동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무형적인 며느리의 노동은 평가절하된 값어치만큼이나 언어화의 무게도 미미하다. 시어머니의 '수고했다'는 말은 속살 없는 텅 빈 껍데기 마냥 가벼워 내 등 뒤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내 서운함은 진심의 무게를 느낄 수 없는 말과 행동의 공허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섭섭함, 서운한 감정은 시가의 가족문화에서 며느리의 위치가 '가족' 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편은 영영 알 수 없을 서운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해소되지 못한 채 모퉁이로 내몰리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나는 진정 시가의 가족이 맞을까'를 떠올리게 한다.

며느리는 '시가에 가는 발걸음이 왜 그토록 무거운지', '오랜만에 온 가족을 만나 볼 수 있게 해주는 명절이 돌아오는 게 왜 반갑지 않은지', '간단하게 안부전화드리는 게 왜 망설여지는지'.

단순히 '망설여지고, 반갑지 않은' 부정의 감정에 날을 세우기보다 '왜'라는 질문에 의문을 두어 시가문화에 대한 며느리의 입장을 고민하고 배려하며 인정해 준다면 좋겠다.


주변 지인들과 메신저를 통해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낼 예정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코로나 여파로 랜선 추석을 지내게 됐다는 몇몇 지인들은 제일 먼저 명절증후군에서 벗어나게 됐음을 기뻐하였다. 지인들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러워하는 내 감정을 불편하게 바라보며 오랜만에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를 꺼내어 다시 읽었다. 그리고 시가 문화에 적응하려 고군분투하던 민사린이 결국, 시댁과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느낀 불편했던 마음을 표현한 문장에서 내 눈길 멈췄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이 자꾸자꾸 떠오르는 걸 어떡하지?'


10년 넘도록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시댁의 언저리를 오고 가던 지난날의 나에게 하는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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