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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Oct 15. 2019

<희생양> 중

성경은 오늘날의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 민족학자, 사회학자나 다른 인문학의 전문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현대적 해석보다도 더 뛰어나다. 그것은 모방의 개념에서뿐만 아니라 거라사와 같은 텍스트에 나타나 있는 악한 영과 모방의 결합에 있어서도 뛰어나다. … 이런 이유 때문에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위대한 작가들, 혹은 오늘날의 베르나노스 같은 작가들은 그들 시대, 혹은 오늘날의 사이비 과학의 지식이 갖고 있는 쓸데없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마의 언어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마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에 욕망과 증오, 선망과 질투의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것의 개입 없이 인간 행동을 설명하려는 어떤 사람들의 악착같은 노력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이 힘은 더 엉큼하고 더 교활한 결과를 낳으며 더 갑작스럽고 더 순식간의 반전과 변환을 일으키고, 결과는 더 복잡하지만 그 원리는 더 간단하거나 똑같이 간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악한 영은 영리하면서 동시에 멍청하다. 악마가 가진 모방적 성격은 분명히 드러나는데, 그것은 우선 악마가 하나님을 흉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악령은 이 신들림을 통해서만 그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숙주 생명체를 얻을 수 있다. 사막에서의 유명한 유혹이 그 주요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모방의 부추김에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할수록 악령이 살 수 있는 숙주는 그만큼 더 많아진다. 그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제일 마지막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의 찬미 대상, 다시 말해 당연히 거부당하고 있는 모방의 모델인 신으로 변하기를 원하는 사탄을 보여주고 있다.     


악마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말하였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마태복음 4 : 8-10)    


사탄을 찬양하는 것은 이 세상의 지배를 원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타인들과 우상적인 숭배와 증오라는 관계를 맺는 것인데, 이런 관계는 사람들이 이런 환상을 갖고 있는 동안은 폭력과 성스러움의 가짜 신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런 환상도 불가능해지는 날, 마침내 모든 것은 총체적인 파멸로 끝맺고 만다.    


-르네 지라르 <희생양> 중    


p.s. 마지막 문단의 문장들은 어딘가 히틀러와 제3제국을 떠오르게 하지 않는가?     

우상적인 숭배(지도자)와 증오(유대인/ 볼셰비즘)라는 관계를 맺는 것인데, 이런 환상을 갖고 있는 동안은(히틀러의 카리스마적 매력) 폭력(전쟁과 대학살)과 성스러움의 가짜 신(발할라/ 게르만족 영웅/ 금발의 야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런 환상도 불가능해지는 날, 마침내 모든 것은 총체적인 파멸로 끝맺고 만다.(폐허로 변한 베를린/ 독일 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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