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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Oct 21. 2019

<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 중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지닌 모순적 본질은 곧 그런 유토피아를 실현하려고 할 때 동원되는 폭력성의 원인이 된다. 즉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도록 강요하려면 무한한 힘이 요구된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기억은 1960년대의 신좌파 사상가들과, 그들의 기획을 도입한 미국의 좌파 자유주의자들을 무겁게 짓눌렀다. 더 이상 마르크스를 만족시켰던 공허한 추측을 도피처로 삼는 것이 불가능해진 실정이었다. 역사가 사회주의로 향한다는 것 혹은 향해야 한다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현실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 결과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잔학 행위를 체계적으로 경시하며 그런 참사의 책임을 오히려 사회주의의 진보를 방해하는 반동세력에게 전가하는 사회주의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 P. 톰슨)이 등장했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교활한 특징이다. 즉, 자신은 과학인 양 행세를 하는 것이다. … 마르크스의 사유세계에는 일종의 신학적 교활함이 도사리고 있다. … 계급이론을 과학적 언어로 장식함으로써 마르크스는 그것을 일종의 가입 조건으로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 이론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엘리트가 따로 있다는 것. 과학 이론은 엘리트층의 계몽된 지식에 대한 증거가 되기도 하고, 따라서 그 엘리트층에게 통치할 수 있는 직위도 제공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일종의 그노시스주의라는 것, 즉 ‘지식을 통한 통치’를 정당화한다는 점이 바로 여기에서 나타난다.     


-로저 스크루턴 <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 중    


*그노시스주의 : 영지주의라고도 번역되는 초대교회 당시부터 나타났던 이단. 그노시스는 그리스어로 ‘신비적이고 계시적이며 밀교적인 지식 또는 깨달음’을 뜻한다. 영지주의자들과 정통 기독교인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믿음이 아니라 앎(그노시스)을 구원의 수단으로 여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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