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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Oct 17. 2019

기독교 혐오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 눈에 비치는 오늘날 상식 밖 한국 교회의 모습은, 불의에 맞섰던 과거 기독교 저항의 역사마저 지우는 부정적인 현상을 낳고 있다. 역사학자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를 "기독교 혐오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지금처럼 혐오 발언에 예민한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 '개독'이라는 혐오 표현을 자조적으로 쓴다. 지금 한국 교회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지난 1997년 기성 교회의 부정부패가 처음으로 보도된 이래 20여 년이 흘렀는데도, 그 시간 동안 단 한 건도 자정하지 못했다. 교회 세습, 목사 성폭력 등 부정부패는 여전히 끊임없다. 덩치 큰 권력이 된 한국 교회는 이미 임계점을 지났다."


심 교수는 "인류 역사를 봤을 때 제도화 된 거대 종교가 의미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면서도 "다만 가치를 지향하는 양심적인, 진정성을 지닌 소수 종교인들의 활동은 분명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간도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 무장투쟁의 교두보이자 한국 사회 독재정권 시기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선봉장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와 관련해 심 교수는 "지금 교회를 이루는 세 가지 코드가 있는데 바로 '목사' '교회 건물'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종교적 감성'"이라며 진단을 이어갔다.


"그런데 '북간도의 십자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목사뿐 아니라 평신도, 역사가, 신학자일 수도 있다. 공간은 교회가 아니라 역사이고, 정서 역시 '감성'이 아닌 '의지'와 '이성'의 영역이다. 이러한 북간도 기독교의 모습은 현재 한국 교회와는 완벽하게 대조된다. 북간도 기독교인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의지를 갖고 식민지 조선을 벗어나 자신들 돈을 들여 땅을 사고 학교를 짓고 공동체를 이뤄 일제에 저항했던 덕이다."


그는 "문제의식을 지닌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싶다면 북간도 기독교인들처럼 기성 질서와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땅을 개척하든지, 새로운 대안 공간을 마련하든지 시대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길로 가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심용환 교수는 "개신교가 지닌 독특한 특징은 세속에서 분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정체성에 있다"고 봤다.


"사실 내세와 현세는 나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내세를 고민할 수 있는 것도 살아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결국 내세에 대한 고민 역시 현세에 뿌리를 둔 셈이다. 칼빈이 이야기했듯이, 이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뤄가는 과정이 우리 구원의 보증이고, 우리가 예정됐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이끈 기독교의 선명했던 역할 역시, 북간도 출신 문익환·문동환 목사를 위시한 당대 기독교인들의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실천 덕에 가능했다는 것이 심 교수의 지론이다.


"지금 한국 교회, 기독교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다. 역사와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인문학적 공감 능력 말이다. 나머지는 이미 충분한 것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휘감은 수많은 부조리와 모순 앞에서 기독교인이라면 분연히 싸우는 것이 아주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에서 심 교수는 병상에 누워 있는 문동환 목사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문 목사는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긴다.


"진지하게 살면 역사와 통하게 되고 예수님하고 교류하게 되는 경험을 가질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영웅적으로 산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나를 그렇게 끌고 갔다. 역사가 우리를 만들어준다."


"나의 주업은 역사 연구다. 교회 개혁을 외치며 전면에서 싸우는 기독교 리더들과 달리 나는 게릴라인 셈이다. 북간도 출신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에 대해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대로 감동하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아닌 대로 그 정신에 공명하는 법이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고 각자 자리에 서 있다 보면 사람들이 동의하는 지점이 만들어지고, 기독교에 대한 주변 인식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역사를 사랑하는 인간의 참된 삶이 기독교 정신의 회복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민주화의 열매를 먹은 세대"라 칭하면서 "민주화 씨앗을 뿌린 문동환 목사의 마지막 자취를 본 입장에서, 그분과 공유했던 정서를 한 톨 한 톨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 세대가 팍팍한 현실을 지탱하는 허리로 자리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젊은층은 자본도 없는데다 '이기적'이라고까지 비판받으면서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세대는 중요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1970년대가 그랬다. 문익환·문동환 목사 같은 소수가 버텨낸 덕에 1980년대 폭발적인 학생운동 시대가 열린 것처럼 말이다."


심 교수는 "명성교회 사태 등 부조리를 보면서 좌절하기 보다는, 소수이더라도 뜻있는 사람들이 연대함으로써 험한 세상에 다리가 돼야 한다"며 "그럴 때만이 우리를 믿게 될 다음 세대 앞에서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모두는 각자 전문화된 역량을 지닌 만큼, 교회가 아닌 사회라는 공간에서 함께할 수도 있다. 교회 밖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며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좌절을 거듭하면서 신앙을 버리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즐겁게 함께할 방법들이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네 이야기, 우리만의 축제와 저항을 만들어 가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그것이 주류 질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게릴라전처럼 교회 밖에서 재밌는 이상촌·해방구를 만들어 우리 이야기를 끊임없이 내놓자. 어느 지점에서는 분명히 역전 혹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테니까."


-이진욱, <기독교 혐오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CBS노컷뉴스,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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