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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Aug 08. 2020

<마리 앙투아네트> 중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진 고유한 매력은, 모두 일치된 의견이었지만, 도저히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움직일 때의 우아함에 있었다고 한다. 발랄한 몸가짐 가운데서 비로소 마리 앙투아네트는 타고난 신체의 음악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 날씬한 몸매로 사뿐사뿐 거닐 때, 애교 섞인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잡담을 하려고 소파에 기댈 때, 벌떡 일어나 계단을 총총 달려오를 때, 타고난 우아한 자태로 눈부시게 흰 손을 키스를 받기 위해서 내밀거나 여자 친구의 허리에 팔을 살짝 두를 때의 그녀의 몸가짐은 어떤 긴장된 노력의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여자다운 육체의 직관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정확히 말해 마리 앙투아네트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천성적으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꼼짝 않고 앉아 있거나, 귀 기울여 듣거나, 책을 읽거나, 경청하거나, 생각하는 일, 어떤 의미에서는 잠까지도 그녀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인내의 시험대였다. 그저 좌충우돌하면서 뭔가 자꾸 이일 저일을 벌여놓고는 한 가지도 끝맺는 법이 없었으며, 스스로 진지하게 성실한 노력을 하는 법이 없이 언제나 바쁘게 돌아갈 뿐이었다. 식사도 오래하지 않았고, 생각도 오래하지 않았다. 


오직 놀고만 싶고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쉽게만 생각하려고 했고 노력이나 일 같은 것은 싫어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건성으로 듣고, 매력적인 애교나 반짝이는 경쾌함에만 빠져, 떠오르기 시작하는 생각은 얼른 내팽개쳐버렸다. 뭐든지 끝까지 말하거나 끝까지 생각하거나 끝까지 읽는 법이 없었다. 참된 경험의 의미와 맛을 캐보려고 진득하게 매달리는 적이 없었다. 책이나 공문서와 같은 인내와 집중을 요하는 진지한 것을 좋아할 턱이 없었고, 꼭 필요한 편지 같은 것만 마지못해 성급하게 끄적이는 글씨로 처리했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조차도 종종 얼른 끝내고 싶어한 흔적이 뚜렷했다. 이런 게으른 기질을 끝까지 잘 받아주는 사람만이 그녀에게서 훌륭한 남자라는 취급을 받았다. 궁정의 기사들이나 친지들 가운데 좋은 충고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단박에 멀리했다. 오로지 즐기자. 그리고 생각이나 계산, 절약 따위에 방해받지 말자. 이런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고, 그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주장이었다. 다만 감각에 따라 생활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 세대 전체의 모럴이었다. 그녀는 분명 그러한 시대의 모럴과 더불어 살았고, 또 그 모럴과 더불어 영원히 사라져갔다.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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