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광호 Aug 14. 2020

<마리 앙투아네트> 중

운명은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지나칠 정도로 그녀를 잘못 길들이고 말았다. 그녀는 전혀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멋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이 당연할 뿐이었다. 생각은 대신이 하고, 일은 백성이 하고, 일신의 평안을 위해서는 은행에서 돈을 지불해주기 때문에 잘못 길이 든 이 여자는 만사를 아무 생각 없이 감사할 줄 모르고 받아들였다. 거대한 요구에 못이겨 모든 것을, 왕관과 아이들과 자신의 목숨을 역사의 거대한 혁명 속에서 지켜야만 하는 지금에 와서야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찾아냈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지성과 행동력을 갑자기 끌어냈다. 곧 그 성과가 나타났다.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감격적이며 감동에 찬 이 말이 갑자기 그녀의 편지에 나타났다. 조언자들, 어머니, 친구들은 수십 년 동안 그녀의 고집스런 영혼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가르치기 힘든 그녀에게 너무나 이른 시도를 했던 까닭이었다. 고통이야말로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간에게 최초의 참된 스승이 되었으며, 배우기 힘든 그녀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최초의 상대였다.    


불행과 함께 이 특별한 여자의 내부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 생각해야 할 때가 오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음으로 생각하고 숙고하게 되었다. 또 일을 해야만 할 때는 일을 했다. 그녀는 점점 더 성숙해졌다. 내적, 외적 생활에서의 완전한 변모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대신의 연설을 한 번도 관심 있게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으며, 놀이, 스포츠, 유행과 같은 일에만 관심을 가졌던 그녀가 자신의 책상을 내각의 관방으로, 방을 외교용 접대실로 바꾸어놓았다. 어떻게 손도 대볼 수 없는 현실을 그 나약함 때문에 그저 화나 내면서 방관만 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그녀는 대신이나 외교사절들과 의논을 했으며 그들의 조처를 감독하고 그들의 편지를 고쳐 썼다. 그녀는 암호 문자를 배웠다. 그리고 외국에 있는 친구와 의논할 수 있는 비밀 통신의 특수한 기술도 터득했다. 은현잉크로 편지가 써지고, 숫자식 암호를 사용한 보고가 잡지나 초콜릿 상자에 넣어져 감시의 눈을 피해 밀반출되었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 도와주는 사람도, 비서도 없이, 문 앞과 방 안에 온통 밀정뿐인 속에서 해냈다. 편지가 하나라도 발각 되는 날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일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육체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열심히 일했다. 그녀는 “나는 편지 쓰는 일로 무척 피곤합니다.”라고 어느 편지엔가 쓴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을 정도입니다.”라고도 했다.     

더 중요한 정신적인 변화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성실한 조언자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경질적으로 멋대로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처리하던 자만심을 버리고 정치적인 문제를 이젠 올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서른다섯 살 되던 해에 그녀는 그녀 특유의 숙명 때문에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아름답고, 애교 있고, 생명이 짧은 유행이나 쫓는,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여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후세의 눈길을 의식하는 여자가 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중

작가의 이전글 <마리 앙투아네트>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