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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Mar 29. 2019

자기애

인간의 비뚤어진 자기애에 기반한 죄된 성향에 대한 파스칼의 인상적인 통찰


우리는 우리의 자아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결점이 사람들의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에 알맞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제일 부정하고 제일 죄스러운 격정을 그의 마음에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를 책망하고 자신의 결점을 느끼게 하는 이 진실에 대해 엄청난 증오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진실을 소멸시키고 싶어 하지만 진실 자체를 소멸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의식과 타인의 의식 속에서 가능한 한 그것을 소멸시킨다. 즉 그것은 자신의 결점을 타인에게는 물론 자신에게까지 숨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며, 그 결점을 타인에게 지적당하거나 타인에게 발각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점에 차 있음은 분명히 악의 하나이다. 하지만 결점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더욱 큰 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의적 자기기만의 죄를 그 위에 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기만당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타인이 허황된 존경을 우리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타인을 속이는 것도, 그들에게서 허황된 존경심을 바라는 것도 모두 옳지 못하다.


사람들이 우리가 진짜로 지니고 있는 결점을 지적할 경우, 그들이 우리에게 전혀 해를 입히고 있지 않음은 확실하다. 도리어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악, 다시 말해 그러한 결점을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내는 도움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이러한 결점을 알고 우리를 멸시한다고 해서 우리는 화를 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그와 정반대 경향이 엿보인다면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뭐라 얘기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진실과 진실을 얘기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그들이 속아 우리 쪽에 서서 우리를 좋게 생각해주기를 원하며, 현재의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그들에게 평가받기를 원하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불쾌하게 생각할 일은 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대우받고 싶어 하는 대로 대우해 준다. 우리가 진실을 싫어하면 우리에게서 그것을 숨긴다. 우리가 아부를 해 주기를 바라면 아부한다. 우리가 기만당하기를 바라면 우리를 속인다.


우리가 세상에서 출세의 행운을 잡아 높은 지위에 오르면, 그만큼 진실에서 요원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잘 보이면 아주 유리하고 잘못 보이면 매우 위험한 사람일 경우, 그 사람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그대로 얘기할 경우, 그 얘기를 듣는 상대방에게는 유익하지만, 그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무익하다. 그 사람은 비난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나 타인과의 관계에서나 위장과 허위와 위선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타인에게 진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진실을 얘기하는 것도 피한다. 그리고 정의와 이성과는 거리가 먼 이 모든 성향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속에 박혀 있는 것이다. 


-블레즈 파스칼 <팡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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