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상에서 받을 생각만 하며 살아왔었습니다.
특히 사회적 제도로부터 오는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코로나 재난 지원금까지...
세금을 냈으니깐 당연한 권리다!라는 철칙으로
국가에 조금이라도 세금적으로 억울한 것이 있다면 하소연하며
그렇게 받으려고만 하는 생각을 하니 세상에 의존하게 되는 저의 힘, 가치. 능력의 제한이 있었습니다. 이는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그릇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받으려고만 했던 삶에서 조금씩 저의 인식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하면 줄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 선물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받아지는 것이 더 감사하고, 혹여나 받더라도 어떻게 하면 2배로 더 크게 돌려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받았을 때 더 크게 돌려주니 세상은 그보다 더 크게 제게 돌려주는 기적의 선순환을 경험하였습니다.
결국 주는 사람으로 내가 선택을 하니, 줄 수 있는 힘, 가치, 능력, 여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는 사람으로의 변화는 큰 의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 모두가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 태어납니다.
이 받는 의식구조에서의 의식에서의 전환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이 의식 구조의 혁명 또한 수련과 참 닮아 있습니다.
스스로 건지지 못하면 아무도 건져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스스로 이 세상과 타협이 아닌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얻을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손해 보는 것에 정색을 합니다.
그리고 항상 비교를 해서 자기가 더 손해 보는 것 같으면 온갖 생색을 내고 불만을 표출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사람들 줄을 쭉 세워놓고 넌 진급하고, 넌 진급하지 않고, 그 결과로 원망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면 버리는 것이 얻을 생각만 하는 사회였습니다.
줄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얻을 생각만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호구'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호구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그것이 저를 제한하고 오히려 착한 호구보다 못한 능력의 호구로 뒷걸음치게 된 태도였습니다.
나와 세상과 단절된 생각으로는 내가 손해 보면 나만 손해 본 것입니다.
나와 세상과 연결된 관점에서는 세상에 손해와 이득은 없습니다. 내가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 세상에 득이 되었으므로 결국은 이퀄(=)이지만 세상의 행복함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집니다. 이것이 나눔의 미덕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기쁘게 할 생각에 창의적인 생각은 넘쳐나고 배움의 가속도는 재빠르며 성공의 복리는 착실히 쌓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세상에 모두 빌린 것이고, 갚아야 할 것이며, 더 많이 갚을수록 행복은 찾아옵니다. 이제 갚을 때입니다. 세상이 미소 지을 때 우리도 진정한 미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미소를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