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님께서는 말씀 암송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진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말씀의 능력을 따라 사느냐 자신의 상식을 따라 사느냐의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 무엇인가 줄줄 외워서 얘기한다는 것에 큰 노력이 필요하단 것을 새삼 느낀다.
나는 어릴 적 교육열 높았던 부모님 덕에 많은 학원을 다녔다.
그중에서도 웅변학원에서의 암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글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A4 2장 10분 발표길이의 웅변 내용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있다.
당시 웅변을 한 것은 리더십 있는 어린이로 자라기 바라는 엄마의 기대루부터였다.
웅변학원에서 Scrpit를 매일 외웠는데,
외우는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서로 다른 Script를 발성을 내어 얘기함으로써
상대방의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집중도를 높여 그렇게 외웠던 기억이 나의 머리를 스친다.
암송도 그렇게 달달달 외워서 머리가 아닌 입에서 바로 튀어나와야 했다.
오히려 머리로 가지 않고 소리가 나와야 했다.
그렇게 외워진 암송문구는 나의 의식과 무의식 경계에 침투되어 말씀이 조건반사가 되어 기도할 때, 평상시에 그대로 튀어나오게 된다.
현재 1-1부터 2-7까지 암송을 달달달 외우며 하루에 꼭 20번 정도씩은 외우니 입에 붙는다는 말이 체득이 된다.
그것은 마치 웅변학원에서 스크립트를 외우던 것과 같다.
스토리로, 말로 풀지 않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를 한다는 것은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매번 대본을 외워야 하는 분들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말씀은 하나님이 해주신.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이니 외우는 그 행위 자체가 추앙하고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말씀을 달고 사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히 지낸다는 것의 반증이다.
예수님은 구약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기가 되는 것이다.
암송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찬양이 되고 찬양은 예배가 되고 예배는 하나님과의 달콤한 교제가 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신명기 8:3 인용)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이사야 61:1-2 인용)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5)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18)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편 22:1 인용)
담임목사님께서는 말씀에 대한 중요성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증언, 십자가의 능력, 그리고 십자가의 승리 또한 알려주셔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셨다.
죄인에게서 죄가 분리되어 우리의 채무 기록을 지우는, 우리를 질적으로 바꿔주시는 것이 십자가의 승리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을 생각하게 되면 그 감격으로 사랑으로 빚진 자로 겸손하게 사명을 감당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내 안의 적들. 내 안의 원수들을 승리의 백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 과정의 삶에 축복을 주신다.
18시 반에 시작한 제자반 수업은 자정을 넘겨 00시 30분이 되어서야 마치게 되었다.
다음날 5시 새벽기도를 나가시는 목사님을
존경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한 명의 제자가 또 다른 제자들을 낳을 것이란 그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시는 목사님은 예수님 그 자체였다.
한마음교회가 독일땅에서 25년간 번영하고 있는지 복음사역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