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담임목사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방향성의 훈련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매일 훈련하지 않으면 되돌아갈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한 습성 때문이다.
걱정, 근심들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인생이 밖에서 휘둘리지 않고 안에서 밖으로 빛이 되어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축복이 순방향이다. 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향이고,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된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내 방향으로 살아왔다.
그 방향은 경제적인 것. 명성적인 것. 쾌락적인 것이었다.
그 방향의 끝은 상속이라면 상속이랄까?
모든 물질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지만
하나님만이 나를 영생으로 부활하게 해 주신다.
제미나이가 실제 역사적 근거로 복원한 예수님 얼굴
나는 복원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날의 일을 떠올려본다.
나는 너무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님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세상은 예수님을 등지고 예수님이 매달려 죽어가는 것에 오히려 환호를 하며 즐기고 있었다.
나는 무리 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은.. 마치 세월호에 아이들이 빠져 죽고 있는데 발만 동동 굴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과 똑같았다.
그렇게 울다가 시신을 만나고 처참함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내 모습도 훌훌 털어버리고, 그렇게 다시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려 가려는 3일 밤 이후 찰나의 새벽이었다.
그날 나는 나의 두 눈을 의심했다.
예수님께서 내 눈앞에 계신 것이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해 살아나셨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였다.
나는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세상에 굴복하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원한 현재의 승리를 위해 부활하신 것이었다!
나는 이 부활의 감격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요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전도 대상자들을 일단 식사로 유혹하여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누가에게 '너희는 증인이라.'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내가 실질적으로 만나고 소망하고 함께하는 친구 예수님을 따뜻하게 소개한다.
마가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한 것처럼 땅 끝까지 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글을 쓰고 나눈다.
마태에게 '제자 삼으라.'라고 한 것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자녀에게 영적 습관의 본보기가 된다.
식사를 한 가족이 섬겨 주셨다.
독일에 30년 된 부부가 세대와 세대를 건너 3대가 교회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에서 감응을 주셨다.
엄마만 독일로 모셔오면 3대 완성되는데.....
아님 내가 밀양으로 넘어가서 로서 로운이와 함께 지내도 3대 완성이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방향이 있으시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