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나이면 그 정도 직급과 월급은 돼야 하는데...
이 정도 시기엔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그런 강박관념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목표를 맞춰 살다 보면 조급증도 생긴다. 이루기 위해서 몸을 혹사한다. 그저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게 된다.
내가 함으로써 다 이루면 좋으련만 세상의 평가가 나의 노력을 몰라줄 때가 많다. 특히 회사에서의 직급과 같은 것이 그러하다. 능력은 모르겠고, 년수도 꽉꽉 채워야 하는 것은 일단 기본이다. 그리고 너무 튀면 되려 비방의 평가를 받는다. 조용히 탈없이 묵묵히 시키는 건 다 해내는 사람을 기업에서는 더 선호한다. 아무리 빨리 성공하겠다고 몸을 내던져봤자, 흙수저 힘없고 빽 없는 노예들은 회사에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회사 내에 조급증은 날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조급증을 가져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나'다. 내 사업. 내 능력의 배양. 진정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나 노예생활에 치여 돌보고 있지 못하는 바로 나 자신이다. 비와이의 Day Day에서도 이런 가사가 있다. '나보다도 이 세상이 더 행복해했어'. 나보다 남을 더 챙기는데 조급하다 보니 이루는 것이 없다. 나의 평가가 아닌 남의 평가에나 의존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증을 갖진 말자. 적당히 갖되 때로는 길게 보자. 현재의 작은 성공에도 기뻐하되 50년 100년 후를 보며 나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무리가 적고 정신적으로도 오늘에 집중할 수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너무 빠른 성공이다. 남들이 결코 인정하지 않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이다. 죽기 전까지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내는 것이다.
그러다 시기가 온다. 세상에 나가는 시기다. 그 시기는 길 필요가 없다. 짧고 굵게 기록하고 그 기록을 이어나갈 사람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서른 이전의 기록은 많지 않다. 서른 이 후 3년 만에 모든 걸 이루셨다. 당시에 따랐던 이들이 만여 명이라면 지금은 전체 인구의 30퍼센트가 크리스천이 되었다. (By Wikipedia 31.1% in 2020 years)
세상에 나가더라도 기대는 말자. 당 시대에서는 너무 앞서나가 인정받지 못하다가 죽고 나서 후세에 가치를 인정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고흐는 죽기 전 단 한 작품만을 팔 수 있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도 성공을 누릴 여유가 없었고, 김광석, 김현식 등 사후에 더 인정받는 예술가들이 흔하다. 너무 앞선 것에 사람들은 경계했었다. 대한민국의 음악 수준을 바꿔놓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무대는 비판과 비방으로 가득한 평가뿐이었다. 이는 예술뿐만 아닌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노예혁명 28법칙. 조급증은 나에게만 필요하다. 세상은 흐르는대로 두자.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 한계는 곧 나의 생각과 능력의 경계까지다. 생각과 능력이 성장하면 나는 한계 없이 끝없이 자랄 수 있다. 이러한 뜻을 후대에 남기도록 기록하고 전파하면 내가 죽더라도 뜻은 이어지게 된다. 죽기 전에 이루고자 하는 것도 평화롭게 내려놓자. 조급증을 갖고 나를 성장시키되, 이 세상의 평가에는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자. 이 세상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오늘의 나를 바꾸는 것에만 집중을 하자.
누구보다 조급증을 가진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러다 죽습니다!!)
Slow and Ste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