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에의 기원

by 수산

미술사학과 전공생이 아니더라도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 바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다. 한 마디로 기본서고, 올해 졸업생인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전공 교수님께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다들 읽어봤지?' 하셨을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난 이 책을 읽어본 적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두꺼웠다.

살인적인 두께의 <서양미술사>

두꺼워도 너무 두꺼웠다. 들고 다닐 엄두는 내지도 못할 만큼 무겁기도 하다. 미술사학과 전공생도 아닌데 이걸 끝까지 다 읽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대단하다. 나는 나약하게도 3학년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펼쳐볼 용기가 생겼다.

연말에 2022년부터는 1주일에 1권을 읽겠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으나, 워낙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687p짜리를 3번에 걸쳐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주일에 687p를 다 읽지 못한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우선 이 게시물에서는 고대서부터 르네상스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221p까지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은 로코코 시대의 미술이고, 이 시대는 곰브리치가 책을 출판할 당시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었기에 <서양미술사>에서는 자세히 다루지조차 않는다(아마 그렇기에 내가 이 책을 지금껏 펼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 변명해본다.). 어느 학문이나 그렇겠냐만은 미술은 그중에서도 특히 취향을 타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면 등한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곰브리치는 아니었나 보다. 이 책의 서문은 정말 명문인데, 그중에서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것이다.


우리는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표현의 아름다움이나 정확한 소묘와 같은 분명한 자질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작품 가운데서도 위대한 작품들이 있다.


이는 17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가 역사화, 종교화를 가장 최고의 미술로 꼽았던 것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곰브리치는 이처럼 이 책에 모든 미술을 빼놓지 않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득 담아놓았다. 입문서로 유명세를 떨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전히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미술에 관심이 생기기에는 이 책을 읽을 정도면 이미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말로만 하니까 감이 잘 안 잡히는 기분일 수도 있겠다. 예시를 위해 내가 르네상스 이전 시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골라보았다. 바로 '전사의 작별'이라는 작품으로, 기원전 6세기 때의 그리스 도자기이다.

KakaoTalk_Photo_2022-01-05-21-27-10.jpeg <전사의 작별> 기원전 510-500년경, 에우티미데스의 서명이 있는 적회식 도자기, 높이 60cm, 뮌헨 고대 미술관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어? 이게 그리스 미술이라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 도자기는 이집트 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 당연하다. 이집트 미술은 화가의 독특한 자아를 펼치기보다는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 필요에 맞는 그림을 그렸기에 천 년에 걸쳐 마치 같은 사람이 그린 것 같은 미술 세계를 확립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것만이 옳은 미술이었다.

자, 그리고 여기 <전사의 작별>이 있다. 이 미술은 언뜻 이집트의 미술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우리는 미술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한 걸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정면에서 본 발을 그렸다는 점이다! (이전까지의 모두 옆에서 본 발만 그려왔다.)


이게 뭐가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원전 500년 조금 전에 미술 역사상 최초로 한 시도였고, 미술사상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런 중요한 요소들이 쌓여서 오늘날의 미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순간들은 내게 무엇이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키고는 한다. 인류가 기원전에서부터 한 걸음씩 내디뎠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작은 증거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존재 의의를 찾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살아가는 동안 분명히 앞으로 나아갔고 그곳에 존재했던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아마 내가 미술을 사랑하는 이유도 그것에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미술은 언제나 이런 순간이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을 보지 못한다. 예술가가 미술을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아서야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작가가 작품을 만들 당시는 언제나 과거가 되는 것이다. 그 과거가 길든 짧든,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반드시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그 짧고도 긴 순간을 거쳐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시간의 소중함까지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미술은 모르고 봐도 감탄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더 재밌다. 내가 로코코 미술을 좋아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물론 로코코 미술의 색채와 섬세함이 나의 취향이었기 때문이 크다. 하지만 미술사를 배우고서 더 좋아졌는데, 로코코 미술은 가톨릭 포교를 위해 만들어진 바로크 미술이나 루이 14세의 왕권 강화를 위해 발전한 신고전주의와 달리 온전히 그 당시 귀족 여인들의 취향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바로크나 신고전주의 미술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계기가 됐겠지만, 나로서는 과거에 추구했던 아름다움이 현대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미술에 단단히 매료된 점은 2022년의 가난한 나나 18세기 프랑스의 귀족인 누군가나 공평하게 온전히 작품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양미술사>는 작가 곰브리치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이다. 덕분에 나 역시도 미술을 좋아하게 됐던 순간을 추억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미술에 대해 관심이 간다면 우선은 흥미가 가는 책들 위주로 읽어보고, 나중에 그 책들에서 배운 정보를 <서양미술사>를 통해 종합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2022년 52주 독서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