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능인인가
지금까지 나는 내 단점을 쉽게 질리는 것, 끈기가 없는 것이라고 정의 내려왔다. 나는 여러 가지 관심사를 한 번에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 오래가는 것들은 손에 꼽았다. 중간에 무언가를 그만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난 대학도 자퇴해본 적 있다. 게다가 그나마 오래가는 관심사들 역시도 서로 공통점이 없고 중구난방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진로를 말해보라고 하면 대답할 수가 없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브런치에 기록하는 독서기록만 해도 장르의 공통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내가 대학을 휴학하고, 또 자퇴할 때 우리 어머니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셨다. 내가 그전까지 어머니의 기대에 곧잘 부역하는 딸이었어서 더 충격이셨을 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난 21살에 대학을 자퇴했지만 22살에 다른 대학에 다시 입학했는데 그게 뭐 그렇게 큰일이었나 싶다. 내 인생의 기찻길을 살짝 갈아탔을 뿐인 일쯤으로 기억하고 있고, 아마 이런 일은 내 인생에서 쉴 새 없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는 나를 보고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저 그런 정신 승리나 허울뿐인 말이 아니라,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저자가 나처럼 잘 질리는 사람들을 수백 명 인터뷰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눈에 보이니 '이게 진짜 되네' 싶은 거다. 나 이외에도 이 길을 걸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성향을 가졌음에도 사회에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가장 위로가 된다. 나보다도 우리 엄마한테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글을 계속 써보자고 생각했다. 조금 모순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들어봐라. 이 책에서는 다능인들이 나아가야 할 접근법을 몇 가지로 분류해준다. 그룹 허그, 슬래시, 아인슈타인, 피닉스, 혹은 믹스 앤드 매치. 나는 스스로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인물상이라고 정의 내렸고 이중에서는 그룹 허그 접근법을 택했다.
내 관심사는 이렇다. 신문 읽고 스크랩하기, 일기 쓰기, 소설 쓰기, 브런치에 글 쓰기, 캐주얼 일러스트 그리기, 크로키하기, 포스터 디자인, 그림 보기, 영화 보기, 드라마 보기, 만화 보기, 예능 보기, 유행 좇기……. 최근에는 글씨체 교정이랑 차 마시기에 관심이 생겼다. 하여튼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하고 싶은 게 많다. 오늘만 해도 브런치를 쓰고 나면 <해가 지는 곳으로>나 <패싱>을 읽고 넷플릭스에서 <패싱> 영화를 보고 싶다. 책에 의하면 나는 스캐너(수많은 비전문 분야에 강렬한 호기심을 지닌 사람) 거나 제너럴리스트(기술이나 관심 분야 혹은 몰두 대상이 다양하지만 전문화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돌아가서, 그룹 허그 접근법은 말 그대로 나의 모든 관심사를 하나로 합쳐 거대한 그룹 허그를 만들자는 소리다. 물론 그룹 허그에 내 모든 관심사가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겹치는 것이 '글쓰기'였다. 글쓰기가 아니라면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도 좋겠다. 하여튼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직업이 좋겠다는 결론이다. 이걸 이루기 위한 방법들도 현실적인 측면에서 설명해주는데, 이건 책으로 직접 읽는 편이 좋겠다.
글쓰기는 내가 오랜 시절부터 관심있던 분야다. 열심히 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매일 하고 있으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는 거의 유일한 분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글쓰기에 있어서는 내가 스캐너로서 해온 모든 활동들이 언젠가 유의미하게 활용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언젠가 내가 쓴 글에 내가 글씨 교정했을 때의 기억이 쓰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난 그걸 브런치에는 적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적절한 제목은 <모든 것이 되는 법>보다는 <내가 나로서 있는 법>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물론 내가 출판사 마케터라면 <모든 것이 되는 법>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표지에는 문어 일러스트를 삽입했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