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에게 필요한 것

by 수산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를 다룬 콘텐츠는 극히 드물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드라마 <밀회> 말고는 어떤 작품이 히트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반면 나이 많은 남자랑 나이 어린 여자의 드라마는 눈만 돌리면 홍수처럼 쏟아진다. 솔직히 볼 때마다 토할 것 같다. <신사와 아가씨>라는 제목은 버젓이 팔리면서 <아줌마와 숫총각> 같은 제목의 드라마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건 비단 드라마 작가들만의 잘못은 아닐 거다.


우리 사회는 어린 여자들의 구애를 받는 늙은 남자들을 너무 많이 보여준다. 두 번 말하지만 진짜 토할 것 같다. 그런 어린 여자들의 유혹을 '젠틀하게' 거절하는 늙은 남자들의 매체도 토할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생각나는데 이건 진짜 끔찍한 작품이었다. 여자들을 미숙한 존재로 묘사하는 건 그만두어야 한다. 이거 좋아하는 남자들도 토할 것 같다. 이제 부엌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오기 전에 역겨운 소리는 여기까지 해야겠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여성의 연상연하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바로 폴이라는 39세 전문직 여성이다. 유명한 줄거리지만, 폴이 쓰레기 같은 연인 로제와 그럭저럭 비슷하지만 좀 젊은 연하남 시몽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심리묘사가 탁월하고 가히 명작으로 평가될만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 책을 고작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썼다. (그의 삶 역시 흥미로우면서도 다분히 안타까운데, 나중에 다른 책을 읽을 때 말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것만으로 고평가 되어야 마땅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재밌게 읽었지만 일고 나면 사회를 향한 불만 몇 개가 생긴다. 이 책은 여성들의 욕망을 드러냈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지만 소극적이다. 왜 여자들은 바람피우는 데에 있어 면죄부를 받아야 하는가. 폴은 오랜 연인인 로제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고 나서야 시몽과의 일탈을 '허락' 받는다. 이 허락은 독자를 향한 허락이기도 하고, 로제에 의한 허락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폴 자신의 허락이기도 하다. 폴은 정상성의 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여성이고 그것이 폴을 압박해왔다. 폴을 이해하지만, 2022년의 관점에서 보면 답답하다.


둘째로 이런 사강이 왜 저평가당했냐는 말이다. 얼마 전에 일본 배우 스다 마사키가 로맨스물을 비하했다고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이건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여성들의 영역으로 소비되는 로맨스가 다른 "심오한" "진짜" 문학에 비해 저평가당하는 것 말이다. 내가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아도 화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저 여성들에게 허락해준 영역이 그것뿐이면서 여자들은 "진짜"글을 쓰지 못한다고 말하는 건 한심한 일이다. 제인 오스틴 같은 위대한 작가도 남자였다면 로맨스물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강의 일평생을 대중들에 의해 소비당했다. 작품 그 자체도 훌륭했지만 사강이 어린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만큼 물어뜯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사강은 중독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 오래 살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아마 나혜석 선생님께서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기 이전에 '바람피운 여자'라는 딱지가 붙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2022년의 나는 이렇다. 다행히도 세상은 아주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가장 큰 방증은 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어릴 때 남자와 여자가 유치하게 만나는 인터넷 소설을 쓰던 중학생에서 적어도 여기까지 성장했으니 제인 오스틴, 프랑수아즈 사강, 나혜석 작가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다양한 장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로맨스물을 쓰더라도 아마 여성과 여성의 사랑이 담긴 이야기를 쓸 것이다. 아니면 그냥 로맨스물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중 하나는 브런치에 남긴다.


이런 삶을 산 내가 폴에게 조금 다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다. 폴은 정상성을 부역하고 싶어 하지만, 폴이 어릴 때무터 정치적으로 올바른 매체를 보고 자랐으며 주변에 목소리 큰 동성 친구 5명만 있었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문제이다. 폴은 로제도 시몽도 만나지 않는다. 폴은 고양이 혹은 강아지를 기른다. 폴은 친구들과 함께 산다. 폴은 어쩌면 파리지앵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도 있다. 폴의 지루한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길로 거듭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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