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넬라 라슨의 <패싱>

내가 속한 정체성

by 수산

https://youtu.be/b0k9-bEh7aM

책을 읽게 된 것은 민음사tv 덕분이다. 아란 차장님(지금 부장님 되심)이 퇴근 후 독서모임을 가지는 영상에서 소개된 책이 바로 <패싱>이었다. 영상을 보다 보니까 책이 읽고 싶어져서 샀다. 정말 대단한 유튜브 광고 효과가 아닐 수 없다. 유튜브 보면서는 진짜 재밌는 책일 줄 알고 기대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유튜브에 나온 내용이 제일 재밌는 부분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아예 재미없는 건 아니었고, 별점 5점 만점에 3점 정도. 만약에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있다면 영상을 보고 책을 읽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서 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재밌는 말은 유튜브에 다 나와 있어서 내 기준으로만 얘기해보겠다. 내가 생각한 이 책의 가장 좋았던 점. 눈앞에 1920년대 미국이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 시대 배경이 정말 탁월하게 묘사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 거리를 표현하는 부분이나 클레어가 매번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시카고, 8월. 눈부신 날. 태양이 무자비하게 이글거리는 녹은 쇠 같은 광선을 비처럼 쏟아붓던 무더운 날. 건물들의 윤곽이 뜨거운 열기에 저항하듯 떨리던 날. 열에 달궈진 보도에서 흔들리는 선들이 솟구치며 반짝이는 차선들을 따라 꿈틀거렸다. 보도 끝에 주차된 자동차들은 춤추는 불꽃에 휩싸였고 쇼윈도가 빛을 반사하는 통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달아오른 보도에서 피어 오른 선명한 먼지 입자들이 지친 행인들의 그을리고 땀에 젖은 피부를 찔렀다. 어쩌다가 미풍이라도 불면 느린 풀무가 화염의 숨결을 부채질하는 듯 숨이 막혔다.


클레어는 아름다웠다. 아이린의 기억에 클레어가 오늘처럼 아름다웠던 적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생기에 찬 자신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는 듯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황갈색 드레스를 입고, 작고 동그란 금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목에는 호박색 구슬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아이린의 목걸이와 비슷한 것을 여섯 개 또는 여덟 개는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이 작가님 완전 미국의 박완서다. (이 분이 먼저 태어난 거 알고 있음.) 원문이 어땠을지 정말 궁금해진다.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으면 구해다가 읽었을 거다.


아이린이 클레어의 비밀을 말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에게 얼마나 유한가 생각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느 순간 서부터인가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게 아니라면 여성으로 패싱 되는 인물의 욕을 하지 않게 됐다. 잘못을 한 여자들은 같은 잘못을 한 남자들보다 훨씬 더 욕을 먹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은 그 이전처럼 함부로 돌을 던질 수가 없어진다. 여성이 저지른 부정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필요 이상의 비난을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아이린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봤던 <애나 만들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남자들은 매일같이 제 혐의보다 더한 짓을 저질러요. 그들이 어떻게 되나요? 잘 살죠. 대가도 악영향도 다 피하고 감옥도 안 가요. 남자들은 언제나 실패해도 잘만 나가죠.


애나는 어떤 의미에서 클레어와 유사한 인물이다. 자신의 출신을 속이고 이득을 취한다. (중요한 점이 있다. 애나는 백인이다.) 애나가 남자였다면 이런 일을 겪었을까? 아니다. 클레어가 백인이었다면 이런 일을 겪었을까?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개개인의 잘못 보다는 이들을 거짓말로 이끈 사회의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전글에도 언급했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거짓말을 했었다. 그 거짓말은 딱히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그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의 편견어린 시선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은 내 잘못이지만, 내가 거짓말을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은 사회의 잘못이다. 내가 잘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난 다시 돌아가도 거짓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로도 봤다. 테사 톰슨을 보려고 본 것이 맞다. 책이랑 굉장히 유사했고, 그랬기에 오히려 책이 더 낫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흑백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몇 달 전에 봤던 <프렌치 디스패치>도 전부 컬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봤었다.


그리고 최근 외국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데, 글을 읽을 때 인물들의 감정선을 가끔 못 따라갈 때가 있다. 주로 드는 생각은 이렇다. '갑자기? 왜?'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마냥 어려웠던 감정선이 영화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글로 표현이 되지 않는 부분을 영상이 표현할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당연히 그 반대도 많다.) 별개로 내가 문학은 한국문학을 선호하고, 영화는 외국영화를 선호하는 것이 이것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느껴진다. 한국문학은 문장이 잘 읽히고 인물들에 몰입할 수 있어서 즐기게 되고 할리우드 영화는 영상에 자본이 더 많이 투자되어 몰입하게 되니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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