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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산 Dec 17. 2023

친할머니께서 아프시다는데 찾아뵙기 싫다

명절도 아닌데 내가 왜

친할머니랑 고모는 같이 사시는데 고모가 최근 느낌이 안 좋으시다고(친할머니께서 워낙 고령이시다 보니) 아빠 엄마 나랑 식사자리를 갖는 게 좋겠다고 아빠한테 연락했다. 그리고 그걸 어제 아빠가 엄마한테 전달했다. 엄마는 당장 오늘 친할머니 댁에 가자고 통보했다.


나는 도통 가고 싶지가 않다…

내가 그 집한테 받은 게 뭐가 있다고 가나 싶다. 설과 추석에 찾아가는 것만으로 벅차다. 그때 갔다 와도 거진 일주일은 끙끙 앓는다. 그때조차도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가는데……


고모는 그게 할머니한테의 효도라고 생각하셔서 나까지 부르시는 거겠지… 내가 얼마나 가기 싫은지 같은 건 모르시니까… 그런데 그걸 왜 그렇게까지 모르시나 싶다. 왜 내 마음 같은 건 아무도 모르나 싶다. 왜? 난 진짜 아빠 얼굴만 봐도 가슴이 다 무너지는 것처럼 괴로운데? 왜 나는 이 나이 먹어서까지 이렇게 개같이 힘들고…… 내가 힘든 건 아무도 모르고…… 근데 이게 내가 곧 돌아가실 분 앞에서 들어도 되는 마음인가…… 내가 힘들다고 죽을랑 말랑 하는 분이 날 보고 싶다는데 안 봐도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친할머니와 그 정도 유대감이 없다. 아빠가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친할머니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남이다…… 아니 남보다 못하다.


친할머니랑 고모 입장에서도 내가 소중한 게 아닐 거다…… 아빠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정상가족이 소중한 거 아닌가? 어떻게 내가 힘들 때는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자기들 힘드니까 오라 마라 뻔뻔하게 얘기하지…… 그게 화나기까지 한다…… 대체 그동안 나한테 뭘 해줬다고? 날 진짜 사랑하기는 하는 건가? 아니겠지…… 사랑하는데 나한테 이럴 수은 없지…… 사랑했으면 엄마랑 아빠 진작 이혼시키고 날 부르지도 않았겠지.


결국 한 시간 동안 엉엉 울다가 안 갔다. 엄마만 갔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게 짜증 난다…… 하지만 난 매번 억지로 설이랑 추석에 꼬박꼬박 찾아뵀는데 이번에는 정말…… 정말 가기 싫었다…… 갑작스레 연말에 그 고역을 견디라니…… (나는 곧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 여행도 가야 한다고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준 애들이랑) 내가 왜….. 내가 내 마음을 챙기면 안 되는 걸까…… 그럼 내 마음은 누가 신경 쓰지? 엄마는 나보고 애처럼 굴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내가 뒤늦게 사춘기가 오기라도 한 걸까?


정말 힘들어 죽겠는 건 엄마조차도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는 거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알았으면 나한테 같이 가자는 말 못 했을 거다. 그냥 내가 엉엉 우니까 얘가 왜 이러나 싶어 안 가도 된다고 말한 것일 거다. 그래…… 내가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엄마는 엄마의 아빠랑 같이 살고 있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아픈 아빠의 엄마에게 친절을 베풀 여유가 조금도 없다…… 내 마음에 그 잠깐의 틈조차 나지 않는다…… 평소에 연락도 안 하는 아빠나 아빠의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일주일의 후폭풍까지 예정되어 있고).


난 아빠 그 자체보다 아빠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왜 모르는데? 아빠 역할이랑 친할머니 역할이랑 고모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 사람들이 같이 밥 먹자고 했으면 갔을 거라고…… 나한테 어떤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밥을 차려주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친근하게 연락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우리가 대체 무슨 사인데 가야 해?“ 이거다.


내가 또 너무 나 힘든 것만 생각하나……

하지만 설이랑 추석에는 꼬박꼬박 가잖아~……

내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거기까지야……

난 아빠 때문에 최근에 6주 동안 42만 원 주고 상담도 받았다고…..~ 아빠 얼굴 보기 싫다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이 흐려진다고 생각했는데 왜 트라우마는 점점 짙어지는 것만 같을까……

지금 또 한 시간 반째 울고 있는데……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게 서러워서, 다들 자기 생각만 해서)

슬슬 머리도 아프고 지친다.

진심으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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