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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Dec 03. 2022

오마카세

인생은 오마카세 받지 말자.

나는 '편식가'이다.

주변에서는 날더러 미식가라고 얘기해준다. 호불호가 강하고, 맛집을 좋아하고, 먹을 땐 많이 먹으니까 그렇게들 말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면 나는 미식가가 아닌 재료를 편식하는 '편식가'이자 많이 먹는 '대식가'라고 손사래 친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들 찾는 오마카세 스시야에 지난 11월 이전에는 한 번도 안 가봤다. 진정한 미식가라면 근 몇 년 간 일본 이상으로 크게 발전한 한국의 스시야들에 찾아감직한데, 일식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오마카세에는 좀처럼 발길이 향하질 않았다. 새로운 식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즐겁지만 중저가 오마카세가 5-6만 원은 하는 세상에 그만한 가격을 지불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이 사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사 선배가 프로젝트성으로 함께 고생한 일이 있어 본인이 쏘겠다며 회사 근처의 적당한 오마카세를 예약하여 초대했다. 기대를 안고 지하의 식당으로 들어가니 차분한 음악, 정갈한 분위기, 미백색의 낮은 조도이지만 내 식탁 위는 핀라이트처럼 비추는 조명, 한마디로 '고급진' 분위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첫 음식은 가쓰오 향이 은은하게 나는 차완무시(일본식 계란찜)였다.

첫 음식은 가쓰오 향이 은은하게 나는 차완무시(일본식 계란찜)였다. 이 음식과 새우튀김을 시작으로 각종 해산물들이 차례로 내어져 왔다. 친절한 설명에 음식도 맛있고 보통 일식집에서 내어주지 않는 어종들로 이루어진 식사를 하며 내내 즐거운 한편으로 '어휴 이 정도씩 감질나게 먹어서 배가 부르려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식사를 다 하고 먹었던 음식들을 헤아려보니 초밥만 14피스에 차완무시니 우동이니 모두 합치면 보통 식사보다 금세 더 많이 먹게 되었다.


내 삶이 떠올랐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커서, 좋은 대학 나와 괜찮은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으로 '좋다'라고 하는 길로만 걸어왔더니 선택하는 법을 잊었다. 회사에 입사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만 6년, 이제 7년 차를 향해 가고 있다. 이 회사에 계속 남아있는 것은 내가 한 선택일까 아님 관성일까.

살아오면서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보통의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에 성공적으로 성취해온 삶이었다 자부한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내 인생이 내가 선택하지 않고 점수에 맞춘 삶을 살아왔기때문 아닐까. 맛있네, 맛있네 하며 한 알 한 알 먹다 보니 평소보다 많이 먹어버린 오마카세 식사처럼 내 삶도 1년, 한해, 재밌네, 즐겁네, 까먹다 보니 의식 없이 지나가버릴까 겁이 나서 그런 것 아닐까.

오마카세(任せ)가 일본어로 '맡김'이라는 뜻이라던데, 내 인생은 오마카세 받지 않고 맛은 덜해도 내가 선택해서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기보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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