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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Jun 06. 2024

은행원 퇴근일지 10.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후각을 잃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후각을 잃게 되면

아주 신기하게도 맛을 느낄 수 없다.


초콜렛 덩어리인 몽쉘통통

향료가 코를 찌르는 풍선껌

시큼새콤해 몸서리 쳐지는 히비스커스

그 어떤 것에서도 맛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요리를 해도 간을 볼 수 없으니

돈가스를 구워 소스나 왕창 뿌릴 뿐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오히려 좋아했다.)


연초부터 몸에 무리를 주었던 스케줄에

신은 호된 몸살감기로 경고를 날렸다.


Hey  평범한 인간이여,

나중에 크게 아파서 울고불고 하기 전에

정신 한번 차릴 때가 되지 않았니?


네... 그쵸.

저 일과 육아로 힘들다는 핑계로 운동도 안하고요

정신이 피폐해지면 쇼츠로 멍때리기나 하지

내면을 돌본다는 건은 사치로 여겼고요

술담배 안하지만 단것 왕창 먹는 탄수화물 중독자에

거북목에 목디스크 오기 직전 자세로 일해요.

돈도 시간도 아까워 취미생활도 딱히 없고요

애한텐 밥먹어라 잔소리 하면서 전 간식으로 때워요.

커피는 두잔... 아니 하루 세잔도 마시네요.

진짜, 지금 정신 안차리면 큰일나겠죠?


주택담보대출의 엄청난 원리금과

곧 들어갈 교육비의 파도 앞에서

직장을 관두지 못할 것이라면


강인한 체력이라도 길러야 겠다는

생존 본능이 든 1주일이었다.


다음 주 부터는 아파트 헬스장이라도

빼놓지 말고 가야겠다는 각성을 하며


나쁜 버릇을 좋은 버릇으로 바꿔

질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소 늦은 결심을 해본다.


아직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사진도 못 찍어봤고

싱가폴 마리아나베이샌즈에서 수영도 못 해봤고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완공도 못 봤고

아니 심지어 한라산 백록담도 못 가봤는데


나중에 휠체어 끌고 갈 순 없지 않겠어?


일하느라 젊음을 바치는 건 좋은데

늙어서 놀 체력은 남겨놓고 늙어야겠다는

아픈 다짐의 일주일이었다.


지금도 몸은 아파서 골골골

정신은 멀쩡해서 부아앙 거리는 중.

(휴일엔 아프지 말자는 것이 직장인 국룰인데)


이참에 매일을 긴장의 연속으로 만드는

일도 좀 줄였으면 하지만


그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직장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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