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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Apr 14. 2020

잭 왕 이야기



 수많은 술자리와 수많은 종류의 술을 지금껏 만나왔지만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건 단 한 가지. 그건 내 서재에 꽂혀있는 잭 다니엘 병이다. 안에 황갈색 액체가 반쯤 차 있는, 언제 마실지 계획 미정인 그 술은 도쿄 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구입했다. 나는 적당한 술을 마시면 내 안에서 에너지가 술술 나오는데, 마치 뚱뚱한 돼지 뱃살을 칼로 찌르면 안에서 피가 철철 나오는 모습 같다. 나 스스로는 통제할 수 없는 붉고 생명적인 에너지가 나오면 나는 그것을 글로 옮겨내고 끈적하게 모인 글을 팔아 또 술을 사 마신다. 맛있는 고기도 사 먹고.

 잭 다니엘의 절반 남은 것을 언제 마실 진 모르겠지만 내가 마시기 전까지 그것은 내 서재 맨 윗칸에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 서재는 밝게 구워진 갈색이다. 꽤 비싼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나무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여러 종류의 책들은 잭 왕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재 안에 가지런하게 정렬되어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도, 케루악의 <길 위에서>도 잭 왕 앞에선 무기력하다. 잭 왕의 권력이다. 잭 왕은 어떤 상을 받은 이야기든 상관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해오고 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도 역시 잭 왕에게 통치된다. 그런 뜨거운 세계를 매일 보면서 나는 지낸다. 잭 왕은 이름 모를 나무 맨 위에서 1930년대 통영부터 1960년대 미국까지 깊고 넓게 통치하고 있다.

 잭 왕은 우리를 자주 비틀거리게 만든다. 맨 정신으로는 저기까지 가는데 비틀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술은 우리를 비틀거리게 만들고 만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는 사람들에게 가보지 않았던 갈 지(之)자의 길을 알려준다. 이런 곳엔 이런 감동이, 세계의 뒤틀린 곳엔 요런 감동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건 잭 왕이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삶이 그렇듯 비틀거림 역시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지 않는다. 저런 곳엔 저런 추악함이. 이 구석탱이엔 입에 담기 힘든 더러움이 존재한다. 우리는 비틀거리며 그것들을 확인하고 만난다. 어쩔 때 당신과 나는 한계치까지 열심히 마신다. 우리가 몸과 돈을 써가며 열심히 잭 왕을 알현하는 이유는 그런 술자리에서 나오는 멋과 추함과 찬란한 순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당신과 내가 알고 또 원하기 때문이다.

 황갈색 액체는 여전히 내 방 서재에 있다. 나는 글을 더 써서 더 팔아내야 하고 하나의 글을 탈고하면 세상에서 내가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잭 왕은 그때서야 열린다. 나는 마시면서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는 다들 애쓴다.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것을 마시는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단순히 재밌으니까 마시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른한 주말 오후 이젠 어색해진 아버지와 같이 텔레비전을 볼 때 괜히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아버지께 같이 마시자고 권하는 이유는 단순히 재밌자고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그냥 더 진해지고 싶다. 농도가 짙고 채도가 높은 순간이 많아지고 싶다.

 일본에 혼자 있을 때, 밤바다에 떠있는 달이 보통보다 두 배는 크고 노랗고 밝아서 술을 더 마신 적이 있다. 술을 더 마시고 보면 달이 더 크고 노랗고 밝게 보일 것 같아서다. 실제로 술에 취한 나는 그랬다. 나는 술을 더 마시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한참동안 달이랑 바다를 보면서 마셨다. 그 순간이 오래 기억나는 이유는 내가 술에 취해있어서다. 술은 내가 맨 정신으로는 보지 못할 것들을 보게 한다. 내가 맨 정신이었다면 기억하지 못했을 장면들을 기억하게 해준다. 또 맨 정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과 생각들을 하게 해 준다. 그렇게 내 인생의 앨범에는 또 하나 소중한 사진이 끼워진다. 그렇게 내 감정과 마음은 더 뚱뚱해진다. 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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