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마지막 그 날

by MUNI
은주 이야기


'언젠가 말할 거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하자'

헤어지기로 마음먹은 지 2주가 지났다.

차갑게 식은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나, 참 나쁘다. 나쁜 년이네.

아무리 해도 억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어떻게 하냐고...


2주 전부터 이미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민석에게는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너도 알고 있을까'


그는 눈치가 빠른 편이니까 벌써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퇴근길 얼굴 마주칠 때나, 전화통화를 할 때는 평소와 다름없이 말을 건넸지만,

역시 먼저 연락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머릿속에선 이미 그의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이젠 의무감에서조차 연락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연락 안 하니까 얘도 연락 안 하네. 신경 쓰지 말고 일 해야겠다'


민석도 연락이 없다.

연애 초엔 내 연락 패턴과는 상관없이 틈나는 대로 문자와 전화를 쏟아내던 민석은 어느새 많이 달라졌다.

연락을 귀찮아하는 나에게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봐, 내가 연락이 없으면 굳이 애써서 연락하지 않는다.

평소에도 그랬다. 시간이 갈수록 민석은 내 눈치를 많이 보기 시작했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것도 다 내 잘못인데,

민석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구석이 심하게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별통보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말해야 하는데,

문자나 전화로 해야 할지 직접 만나서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자주 들어가는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 의미 없이 글들을 훑어본다.

그러다 이별통보 방법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한다.

하나같이 댓글들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문자나 전화로 하는 이별통보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는 거라고,

어쩜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냐며,

남자 친구에게 카톡 이별통보를 당한 여자들이 카페에 모여 외치고 있었다.


'그럼 만나자고 해야 하나'


이미 일주일째, 이런저런 핑계로 민석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얼굴을 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말하는 게

우리가 지내온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가 싶어

만나서 얘기하는 걸로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만나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것이며, 그 말을 들은 민석의 표정은...

그리고 마무리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한동안 가슴이 답답해진다.


- 민석아, 오늘 데리러 올 수 있어? -

- 당연하지 오늘 보는 거야?

알았어 이따 봐~~~^^ -


나의 문자에 칼같이 답장하는 그

오랜만의 만남에 왠지 들뜬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이게 더 잔인한 것 같은데...'


기분 좋게 오고 있을 민석에게 이별통보를 해야 한다.

그냥 차라리 문자로 말할까

소심병이 도졌는지 수십 번씩 마음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래. 그냥 하자'


- 회사 앞이야. 천천히 나와~^^ -

민석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터벅터벅

5분 남짓

건물에서 나오는 짧은 시간 동안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가동해본다.


" 왔어~~? 오늘도 너무 수고했어~ "


연신 나를 바라보며 웃는 민석

웃음 뒤가 쓸쓸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 너도 알고 있겠지... '


민석은 운전을 시작한다.

그러다 나는 그간 연락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기 시작한다.


" 그래 힘들었겠다 "


이런저런 이유를 다 갖다 붙이고 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 우리 잠깐 얘기하고 갈까? "

" 응"


민석은 내 마음을 감지한 건지, 아니면 불안했던 건지

좀 더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시도한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민석


" 은주야. 오늘 일하느라 많이 힘들었어? "

" .... "

" 나 예전에는 은주 네가 정말 막연하게 좋았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어떻게 너를 만났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네... 네가 너무 좋아.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


평소에는 잘하지 않던 강도 높은 오글멘트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린다.

민석이 내 왼쪽 손을 꽉 잡는다.


" 민석아 미안해 "

" 뭐가? "

" 그냥 다 "

" .... "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 저기, 할 말이 있는데... "


민석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급기야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


민석은 말이 없다

왜냐고도 묻지 않는다.

무거운 공기가 차 안을 감싼다.

5분간의 침묵을 깨고 대답하는 민석


" 후우.......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뭐라고 말한들 아무 소용없겠네. "


체념한 듯 애써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민석

아까와는 정반대 되는 날카로운 말투다.


" 미안해 내가 너한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 없던 변명의 말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민석은


" 알았어. 일단 집에 들어가. 너무 늦었다 "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인사를 건넨다.


" 그래 운전 조심하고... 잘 들어가 "


마지막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린다.

그게 그와 나의 마지막이었다.



민석 이야기



2주 전부터 은주의 연락이 뜸해졌다. 혹시 이전처럼 헤어지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믿고 싶었다.


'일 때문일 거야 '


끝이 보이는 은주와의 만남_

그걸 알면서도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은주와 마당 있는 집에서 고양이 두 마리, 개 한 마리를 키우며 알콩달콩 사는 그런 꿈

정말로 기분 좋은 꿈


'아닐 거야'


마음이 점점 돌아서는 은주의 행동들을 이미 눈치챘으면서도

더 밝게, 더 다정하게 대하며 잘해주려 노력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은주를 생각하니 불안해 미칠 것 같지만, 애써 머릿속을 비워낸다.


'아니야 아닐 거야. 일단 문자라도 보내자'


- 은주야 사랑해. 오늘 하루도 힘내고 파이팅! -

- 응^^ 민석아 너도 힘내 -


의무적인 듯 감정 없는 답장이 날아온다.

도대체 언제 은주의 얼굴을 봤던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늘

웬일로 퇴근길에 보자는 연락이 왔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오늘 보면 뭐라고 하지?

일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정말 잘해줘야 되는데....

먹을 거라도 사갈까? 아니면 꽃이라도...?'


하지만, 은주의 퇴근시간보다 늦게 도착할까 봐

어디도 들리지 못한 채 급하게 달려왔다.

기다리는 내내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오랜만에 만난 은주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어둡다.

게다가 내 눈도 잘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 미안해 "


은주의 이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운전대를 잡은 손이 저릿저릿하다.

아마도 이제

너를 만나는 게 더 힘들어지겠지

등 뒤에선 그녀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간 마음 정리를 쭉 해왔던 것처럼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은주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한동안 말이 없다.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창밖을 바라보니 컴컴한 밤하늘만 보인다.

새끼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구름 낀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서러움과 아쉬움이 한숨으로 터져 나온다.


은주의 불안한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보내줘야 할 때다.

최대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심장을 꾹꾹 눌러 담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 잘 들어가. 잘 쉬고... "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하고, 한 마디 붙잡는 말조차,

원망하는 말조차 뱉어내지 못한 내 모습에 견딜 수 없는 좌절감이 밀려온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구나

마지막이다

요즘 들어 부쩍 줄어든 너의 연락, 너의 웃음

결국 이런 거였네. 믿었던 내가 등신이지

아 오늘 진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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