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였나. 우리의 일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봐도 당신은 내 기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평균적인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기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자로 잰 듯 딱 맞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기며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모든 걸 덮어놓고 회피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언젠가 무너질 얕은 모래성이라는 걸 매일 느끼고 있었다. 호시탐탐 하찮은 이유라도 트집 하나 잡히는 날에는 당장에라도 돌아서고 싶었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나 한다는 말이
‘너 때문에 승질나서 홧김에 새 차 뽑았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당신 사정을 뻔히 아는데,
‘나이만 들었지, 아직도 애구나’ 싶었다.
뒷감당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하는 거니까... 하지만 왜 나 때문에 홧김에 질렀다는 말을 강조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당신의 태도에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너도 좋은 차 타니까 좋지?’ 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차 할부금이 한 달에 얼마씩 나가는데?’
‘음... 백만원 정도?’
내 기준에서는 차 할부를 몇 년간 한 달에 백 만원씩 낸다는 게 조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차에 관심이 없었고, 그저 편리한 이동수단이라고 여겨왔지만, 당신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취향이 다른거니까.
물론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질렀겠지만, 출퇴근 때 데리러 온다는 말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당신이나 편하게 다녀, 나는 버스타는 게 더 빠르고 편해’ 그런데도 굳이 오겠다며 아침 시간 쉬고 있는 나를 불러내 기어이 카페를 데리고 간다. 처음엔 좋았다. ‘이게 사랑이구나’ 생각했다.
근데 점점 무덤덤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생활 패턴과 가치관에 따라 이렇게 마음이 달라질 수 있구나 느꼈다.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현실적이고 냉정하고 차가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선에서는 절대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정반대였다. 현실은 내팽개쳐두고 이상 속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단순한 것에 충실했다. 절대 변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고, 바꿀 생각도 없었다. 그냥 조금 쓰리고 아팠다.
이건 너무나 단편적인 일에 불과했다. 이보다 크고 작은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그 때마다 평행선을 걷는 내게 누군가 발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또 한 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