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2012년 5월 8일
마침 그 날이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에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갑작스레 찾아온 초여름 날씨에 반팔을 입었음에도 등에 땀이 흘러내릴 것 같은
뜨뜨미지근한 날이었다.
방송국 FD를 면접을 보기 위해 찾은 한 방송국은 인적드문 외곽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풍경과 전혀 달랐다.
버스를 타고 찾아갔는데, 아 이건 출퇴근길이 수월하지 않겠다는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
면접을 가야되나 말아야되나 머릿속에서 수만번 계산을 했다.
사람들 발길 닿지 않는 황량한 땅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회색 건물_
낯설고 두렵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4층 편성팀.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숨죽인채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다.
여느 사무실과 다름 없는, 아니 더 적막한 분위기의 공간
방송국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던가?
PD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40대로 추정)와 그리고 작가로 보이는 30대 여자 1명,
이렇게 세명에게 둘러싸여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보고 질문을 하고_
나는 입으론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연신 방송국 안의 풍경과
오늘 처음 본 PD와 작가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작가는 확실히 인상이 센 편이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날카로운 얼굴형에 차가운 눈빛_
확실한건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PD_1 의 인상은 자유분방하고 털털한 느낌
아무렇게나 뻗친 더벅머리에 가늘고 네모난 안경테,
담배를 많이 펴서 그런지 꽤나 걸걸한 목소리
깐깐한 인상은 아니었다.
'그래 나쁘지 않아'
나는 면접의 합격여부는 알지도 못하면서,
같이 일하게 될지도 모를 방송국 사람들에 대해 벌써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면접 분위기는 꽤나 긍정적이었다.
별다른 하자가 없으면 바로 같이 일하게 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게 이럴 땐 좀 쓸모가 있네
딱히 학교에서 배운 건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학점과 과의 타이틀은 나름 써먹을 데가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내가 방송을 좋아하고 관심있어하고, 꽤나 열정있는 사회초년생으로 비춰지는 듯 했다.
나는 나머지 한 명, PD_2를 힐끗 쳐다봤다.
분명 잘생긴 40대 중년의 얼굴이었지만, 피 한방울 나올것 같지 않은 강한 인상이었다.
한 이틀전에 이발한 것 같은 단정한 머리
칼각 잡은 라코스테 반팔 카라티에 약간은 젊어보이고 싶은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
PD_2도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역시 냉정한 말투였다.
솔직히 말해서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부류였다.
똑부러지고 엄할 것 같다는 느낌. 이건 백프로다.
오늘부터 조금이라도 인수인계를 받고, 같이 일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내 전임으로 일했던 1살 많은 언니는 무대공연 쪽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다른 이유는 더이상 물을 수 없었다.
뭔가 찜찜하긴 한데, 그래도 일은 해야지...
그냥 의심하지않고 열심히 일만 배우기로 했다.
백수생활이 더 길어지면 안된다는 불안감에 어떻게든 잘해야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5층 편집실_
닭장같이 좁은 방마다 컴퓨터 한 대와 편집기 한 대,
그리고 그곳엔 한 사람씩 들어가 영상물과 씨름하고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곳에 들어가 영상 파일을 작은테잎에 굽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려웠다. 처음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복잡하고 무섭게 생긴 시커먼 기계들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한참을 노트에 순서를 받아적고, 따라해보고
뭔말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적었다.
그러다 곧 현실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빠져들어 일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한 두 시간쯤 지났나?
작가 언니가 다가와 오늘 회식이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첫날부터 뭔 회식'
'집에 빨리 가서 쉬고싶은데 글렀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진다.
게다가 메뉴도 '막회집'에서 회를 먹는다니...
나는 회를 못먹는다.
아니 싫어한다.
기본적으로 날것을 싫어하고 회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일단 하던 일을 접고 회식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내 인생 첫번째 헬게이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