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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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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Oct 18. 2020

여린 사람

엄마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미스터트롯을 보면서 울고 동네한바퀴를 보다가 울고 놀면뭐하니를 보다가 울고 드라마를 보다가 운다. 때로는 공감하지 못할 장면에서도 엄마는 눈물을 흘린다. 수도꼭지인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중간 단계 없이 갑자기 눈물이 나오는 건 최근에서야 생긴 현상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란다. 또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 라고. 아 심지어 미스터트롯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우는데 엄마는 사실 외할머니와 그럴만한 상황은 아니다 싶은데 ‘왜 울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고 엄마를 키워준 엄마의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인가보다 그렇게 단정짓고 넘겼다.





엄마는 때때로 어릴 적 살던 동네를 가고 싶어 했다. 내가 부산 감만동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엄마도 같은 마음일거다. 최근 예술인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 돼서 엄마 초본을 발급받아서 봤는데, 주소지 이력이 화려하다. 얼마나 이사를 많이 다녔는지 초본이 몇 장이 나왔다. 상흔이다. 누가 그렇게 이사다니는 걸 좋아하겠냐만은. 지역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추억이 있는듯했다. 66년 논산 연무읍에서 태어난 엄마는 평소에도 논산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지난번 여산 시장 갔을 때도 꼭 엄마를 데리고 그 근처 연무읍까지 가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한 30여분만 걸어가면 엄마가 다니던 황화초등학교가 나오는 지점이었는데, 조만간 손 꼭 잡고 같이 가야겠다. 그러다 중학교 때 엄마는 전남 장흥으로 또다시 이사를 갔다. 외할아버지는 그 외딴 시골집에 엄마를 놔두고 며칠씩 일을 다니며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이 어찌 그리 매정한지...’ 라며 한숨을 쉰다. 그러면서도 장흥 시골집 앞에 하천이 있었는데 거기서 동네 친구들과 물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했다면서 또 그 기억은 마치 즐거웠던 것처럼 소녀같이 말씀하셨다. 






그곳에서 장흥여고를 졸업한 엄마는 또다시 인천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충남, 전남, 인천... 도무지 알 수 없는 연결고리다. 외할아버지의 마음이 궁금하다. 왜 그러셨냐고 물어보고 싶어도 이제는 물어볼 수가 없다. 엄마는 인천에서 대학을 나왔다. 그 근처 열우물이라는 곳에서 또 다른 추억이 있었나보다. 열우물 풍경이라는 그림을 몇 가지 시리즈로 캔버스에 담아냈다. 아마 그 골목에서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나보다. 이후 다시 전북 익산, 경기도 수원을 거쳐, 드디어 89년도 부산에서 만난 아빠와 함께 살기로 다짐하며 금정구 서동으로 전입했다. 그 이후 꽤 오랫동안 부산에 있었다. 나도 그곳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니고 십 몇 년이 흐른 뒤에야 우린 전주로 왔다.







엄마는 참 여린 사람이다. 항상 불안해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사방을 둘러본다. 그런 엄마가 혼자 동분서주하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화실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또 어떤 불안 요소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마음을 비운다. 일일이 안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내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지 않을 때는 그냥 믿는다. 잘 할 것이라고. 오늘은 또 어떤 그림을, 노래를, 사람들을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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