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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Oct 11. 2020

누군가의 기대, 그리고 실망

                                                                                                                                                                          형제 없이 외동딸이라

참 귀하게 컸겠다는 말을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시큰둥하게 반응하면 '왜저래' 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딱히 동의하지 않는 말이라도

남들이 부러워하면


- 네 그렇죠 하하


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


자식 하나나 둘이나 귀하긴 마찬가지지.

자식이 둘이라 사랑이 50%로 나눠지는게 아니지 않나.

한 놈에게 100%, 또 한 놈에게 100% 주려다보니

부모의 에너지가 두 배로 들 뿐

그리고 그 애정은 사람 성격마다 틀린 것을.


30세를 지나며

반복적으로 들은 말들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말에 반응하는 내 태도도 나이가 듦에 따라 달라짐을 발견했다.


10대때는, 그리고 대학생 때는

으레 어른들이 하는 말이려니

생각하며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애가 참 착하구나.' 라고 말했다.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마치 '참 잘했어요' 스티커 하나를 획득한 것처럼

뿌듯해 했다.


'그래. 부모님 욕들어먹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착한 마음으로 아가씨가 된 나는

이제 반복적인 말을 또다시 듣게 되었다.


졸업했으면 취직해야지 

취직했으면 결혼해야지

결혼했으면 아기 가져야지

아기 가졌으면 둘째도 가지고 똑똑하게 키워야지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시댁에서 이쁨받아야지


그래 이건 딱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 였다.


나는 그 중에서도 일정한 때가 되면 결혼해야된다는 말이 참 듣기 싫었다.

가장 큰 배신감은 아빠한테서였다.


외동이기에 모든 사랑과 투자는 아낌없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그에 비하면 현재 나의 모습은

기준에 매우 미달하는 상태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니까


난 그래도 아빠가

그 정도로 나를 이뻐했으면

결혼 시키기 아까워하고

평생 데리고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 아닌 기대를 했었다.

(그렇다고 그늘아래서 평생 먹고 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건 뭐

20대 후반 들어서자마자

아빠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없냐

결혼하고 싶은 생각 없냐

누가 소개해준다는데 만나볼 생각 없냐

고양이만 이뻐하지말고 손주를 안겨줘라

등등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대사들을 읊어대셨다.


이 모든 시발점은

아빠 동창과 친구들의 자녀분들이 결혼을 하면서 시작됐다.

결혼식장에 꼬박꼬박 다니시더니

나만 보면 같은 소릴 반복하셨다.


아직은 내가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셨나보다.

누군가가 그것도 일정 나이가 지나면 포기한다고 하긴 하더라만


내 미래엔 

내 머릿속엔 결혼이라는 이야기가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그럴때마다 나는 말을 돌리고 자리를 피했다.

그 수밖엔 없었다.


남들에겐 세상 까칠한 고슴도치처럼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부모에겐

위아래로 눈 치켜뜨며 대들 순 없지 않나


이렇게 아빠에게 무참히 배신을 당하고 나니

기댈건 엄마 뿐이었다.

엄만 그냥 내가 자기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분이다.

물론 한번씩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는 딸을 보고싶어 할 때도 있지만

시집가면 고생한다고

혼자 하고싶은대로 하면서 자유롭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적어도 엄만

내 의견을 언제까지나 존중하는 자세로 들어줬다.


어쩌면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엄마는 더 외로웠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항상 안쓰러워하는 것이

내가 나같은 딸 없이 일생을 보낼 일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하셨다.


- 아니야 괜찮아 나는 혼자서도 잘 살께

- 나는 딸이 있어서 좋은데, 너는 딸이 없어서 심심해서 어떻게 해

- 아니야 나는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내 딸 해

- 내가 왜 네 딸이야. 엄만 엄마지

- 그냥 말이 그렇다고. 나도 엄마 엄마 하면 되지


늘상 우린

누군가의 기대를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에게 되도 않는 기대를 하며 실망을 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지만

언젠가 실망할 것임을 알고 있다.


기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것이라

위로하고 싶다.


나는 딸이 없지만 엄마를 딸처럼 보살피고

엄마는 엄마가 없지만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했다.

각자의 사는 방식은 모두 같을 수 없다.

남들의 시선보단 현재 나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오늘도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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