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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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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May 21. 2020

집밥

생활 에세이

엄만 요리도 그림 그리듯 만들었다. 무슨 찌개, 무슨 조림 등등 요리책에 나올법한 평범한 요리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재미없는 요리 생활을 수십 년간 이어온 것이었다. 그건 요리에 자신 없는 어느 주부가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내가 여태껏 봐온 엄만 확실히 요리에 재능도 흥미도 없다. ‘맛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그야말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것’이다. 조미료는 무조건 몸에 좋지 않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양념으로 간을 하다 보니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나는 자연인이다’ 느낌의 음식이 밥상에 올랐다. 그렇게 나온 음식은 맛은 없지만 속은 편안했고 무엇보다 엄마의 생각이 들어있었다.


주부가 되는 순간 기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힘든 것이 요리가 아닐까. 요즘 시대가 아무리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여자들은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다. 설령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해도 먹성 좋은 딸내미와 하루의 피로를 잔뜩 짊어지고 들어온 남편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선 무조건 불 앞에 몇 시간이고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냉장고에는 마트 진열대처럼 재료들이 그득하게 들어있지 않다. 대부분의 가정집이 그렇듯. 늘 조금씩만 구입했고, 무언가 풍족하게 사다 놓은 일이 있었나 정말 까마득하다. 일 년에 두세 번 제사 때나 되어야 냉장고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지난번 된장찌개 끓이다 남은 버섯 몇 조각, 삼겹살 구워 먹다 남은 양파 반 토막, 몇 달째 방치된 통조림 햄 등... 엄마는 눈에 보이는 재료들을 단숨에 스캔한 후 최대한 있어 보이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한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요리들이 간혹 나오기도 한다. 미역국에 햄이 들어간다든지 된장국에 계란이 들어간다든지 뭐 하튼간 일일이 기억조차 떠올릴 수 없는 난생처음 먹어보는 재료들의 조합들이 밥상에 올라왔다. 오십 대 중반을 향해가는 엄만 요즘, 저녁상을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한 삼십 년 결혼 생활해보니 그래도 가족들 밥상 차리고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뿌듯하다고. 그 말에 고마웠고 또 찡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엄마의 집 밥이 너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맛이 길들여진 걸까 아니면 정말 혹시나 요리실력이 늘은 걸까. 진실은 알 순 없지만 맛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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