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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May 21. 2020

탈출을 막는 방법

생활 에세이

남자가.

한 집안의 가장이,

집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당신은 집이 있어 참 부럽다며

이 엄동설한에 눈,비 피할 지붕이 있고

따뜻한 이불이 있고 가족들이 있으면 당연히 그 집에 가고 싶은 것 아니냐며

한 소리 들을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집이라는 공간이

휴식공간처럼 마냥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아빠를 통해 가끔씩 느끼곤 했었다.

술김에 하신 말씀이시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100% 진심이셨다.

영화나 TV드라마를 통해서도 보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남자들 중에선 밤에 딱히 할 일이 없음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을 한다거나(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집에 들어가지 않고 괜히 동료나 후배들을 불러 밥을 먹는다거나(그렇게 친하지도 않음)

밥먹을 사람도 없으면 그냥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다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혼자 차 안에서 시간을 때운다거나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귀가시간을 늦추고 싶은 가장들은 도대체 어떤 심리일까


집이라는 공간이 가장에게는

'내가 책임져야 할 공간'

'내가 먹여살릴 가족들이 숨쉬는 공간'

고로 '집에 들어가면 내가 먹고 입혀야 할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공간'

'내가 없으면 안되는 공간'

'나의 책임과 1:1로 만나는 공간'

그런 수많은 부담감과 책임감이 교차하는 곳이

남자들이 생각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집에서 쉬고 싶지만

딱히 집에 있어도 맘편하게 쉬는 것 같지 않아 휴일에도 어딘가로 나가고

굳이 중요하지 않은 약속을 정해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마치 집을 나가는 순간

내가 탈출해서 자유를 얻은 듯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건 당연한 일일까 슬픈일일까

남자에게 집이 편하지 않다면 도대체 어디서 편안함을 찾아야 하는 걸까

허름한 6평짜리 원룸에 살면서도 부모님과 살지 않아 행복하다는

어느 직장인의 인터뷰를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

부모님 집에 살면 빨래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월세도 안들고

여러모로 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집에서의 편안함보다는

차라리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훨씬 낫다며 피식 웃었다.

그 나머지 비용을 이길만큼의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기에 집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돈도 많이 들고, 깔끔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은 원룸이지만

적어도 내가 싫은 소리를 안 들어도 되고

내가 원하는대로 시간을 쓸 수 있고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기에 집을 나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니면 집 안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이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휴일에 꼭 가족 모두가 다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시간, 각자의 공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휴일의 진정한 목적이다.  

하나의 충전기로 모두의 휴대폰을 충전하지 않듯,

각자의 충전기로 각자의 휴대폰을 충전하는 것처럼

사람도 가족도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니 각자의 휴식을 위해

서로에게 여유를 주는 것만이

그들이 이 집을 '탈출'하지 않게끔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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