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런 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NI Jan 04. 2022

엄마의 생애 첫 대장내시경,
식단에 동참하다

보통 늦어도 40대 때는 첫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도한다. 하지만 엄마는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이유들로 생각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57세가 되는 2022년 올해에 첫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초 병원에 방문했고, 검사 예약자가 많아서 새해로 미뤄진다고는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날짜가 잡혔다.

 

검사 전날과 검사 당일 새벽에 마셔야 할 약, 주의 사항이 써진 종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을 살펴보다가 검사 5일전부터는 식단 조절이 필요해 이런저런 검색들을 했다. 대장내시경 전에 먹어도 되는 음식, 먹으면 안되는 음식, 검사 후에 먹을 수 있는 음식 등 각종 검사 후기들을 섭렵하며 엄마의 검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철저히 준비했다. 참고로 나는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나 내 주변 사람들에 관련된 일이라면 꽤 철저하게 알아보고 도와주려는 편이다. 내가 검사하는 건 아니지만 마치 내가 검사하는 심정으로 나도 식단 관리에 동참했다.


 

 

흰 죽에 간장을 살짝 곁들여 먹는다거나, 바나나, 카스테라, 사과 등이 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는데 실질적으로 포만감있게 끼니를 해결하는 데에는 쌀밥만한 게 없었다. 흰 죽을 끓인다는 건 사실 번거로운 일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쌀을 불리고 냄비에 끓이고 으깨고 저어주고 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린 흰 밥에 물을 충분히 붓고 따뜻하게 끓여서 충분히 불어난 밥알을 먹는 걸로 식사를 대체했다. 왜 옛날엔 밥에 물 말아서 김치에 먹는 일도 허다했는데. 거기에 아무런 양념이 첨가되지 않은 맨 간장을 반찬삼아 때아닌 자린고비 식단을 차려냈다.

 

아 이전까지만 해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쌀밥의 소중함. 흰 쌀밥이 이토록 맛있는 것인 줄 상상도 못했다. 허기진 배에 채워진 팅팅 분 쌀밥과 간장의 참맛은 먹어본 자만이 안다.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소함과 부드러움, 간장과 쌀밥의 조화는 굴비 밥상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게 최대한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자극적이지 않은 쌀밥을 주식으로, 간식으로는 파리바게트 실키 롤케익을 종종 나눠먹으며 동질감을 느꼈다.

 

검사 하루 전날, 그날까지도 우린 바나나, 롤케익(건포도는 빼고), 물에 만 쌀밥을 먹으며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는 저녁부터 금식을 시작했고 아침에 먹은 밥 한그릇을 마지막으로 수련에 들어갔다.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지고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는 이 모든 현상의 이유가 음식 때문이라니.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먹는 것 만큼 중요한 게 없구나' 새삼 뼈저리게 느낀 5일이었다.

 

단 한가지, 동참하지 못한 게 있다면 대장내시경 약을 먹는 일이다. 검사 전날 저녁 8시에 약 한봉을 물에 타서 마시기 시작했다. 엄마는 짜고 달고 이상한 맛이 난다며 역겹다고도 말했다. 토할 것 같았지만 조금씩 쉬었다 마셨다를 반복하며 끝까지 한 통을 다 비워냈다. 그리고는 다시 맹물을 한 통 부어서 천천히 들이켰다. 그때부터 시작된 화장실 수난.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속을 비워내고 또 비워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독소들을 배에 집어놓고 사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먹을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고개만 돌려도 먹을 것 천지에 라면은 또 가장 가성비 좋은 한 끼 식사가 아닌가. 하지만, 분명 내 몸과 건강에는 안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리고 우린 가장 기본적인 쌀밥과 간장만 먹는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엄만 새벽에도 2차 약 한통을 거뜬히 마셔냈고, 그 힘들다는 대장내시경 검사 식단 조절을 한번에 해냈다. 실패하면 또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야하기에 한번에 끝내는 것이 좋다. 난 연신 엄마에게 중얼거렸다. '난 못해... 난 그 약 못 먹을 것 같아' 정말이지 나는 못할 것 같았다. 30대인 지금 검사받아도 충분한 시기이지만, 40이 넘으면 할 생각이었다.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었다. 그렇지만 40대가 되어도 내가 검사 식단을 이겨내고 역겨운 약 한 통을 비우며 제대로 검사를 마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의지가 약한 인간이라는 걸 내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작은 용종 5개를 떼어냈다. 솔직히 아무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용종 5개라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이걸 방치하고 키웠다면 훗날 암으로 발견될 수도 있었던 일을 사전에 막은 것이다. 대장내시경 검사는 정말 꼭 필요한 일이란 걸 깨닫고 나도 언젠가 돌아올 그날을 위해 때때로 독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65세인 아빠가 아직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아서 살짝 걱정이 된다. 아빠는 나보다 더 식탐이 강하고 의지가 약한 편인데, 과연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까? 어찌됐든 부모님의 대장내시경, 위내시경 검사는 반드시 체크하고 도와드려야 할 부분이다. 자식으로서. 훗날 나에게도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언제든 경각심을 갖고 건강검진이나 검사를 잘 받아야겠다. 그리도 검사가 아니더라도 때때로 속을 비워내는 것은 꽤 괜찮은 경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장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