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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Feb 15. 2024

겨울, 홋카이도 필름사진 Cinestill 800T

떠날 때의 설렘, 뒤늦게 찾아오는 그리움

비에이 - 크리스마스 나무


비에이 - 크리스마스 나무


비에이 - 탁신관 투어


비에이 - 탁신관 투어


비에이 마을


비에이 마을


비에이 마을


비에이 마을


비에이 역


비에이 설경


비에이 설경


비에이 설경


비에이 설경


비에이 설경


비에이 설경


비에이 설경


비에이 설경


오타루


오타루


오타루


지난 여름부터 준비한 여행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겐 로망일 수 밖에 없던 홋카이도 여행은 '언젠가 꼭 가야지' 다짐했던 일이었다. 눈꽃 축제 기간인 1월 말~2월 초는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기간이다. 그 기간을 제외하고, 언제든 두껍게 눈 쌓인 설경을 볼 수 있는 시기를 고르다 1월 중순을 택했다. 휴가를 계획했고, 출국 일정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경을 좋아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출퇴근길을 어렵게 만드는 자연 현상이었고, 그 모든 걸 피하고 싶은 먼 곳으로 가길 원했다. 어쩐지 평소 여행보다 짐이 더 많았다. 겨울 삿포로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배낭 하나에 넣자니 카메라와 개인 짐들이 무척 버겁게 느껴졌다. 가방을 짊어지고 가는 내내 생각했다. '다 필요한 것 맞나?' 현지 상황을 아무리 검색해보고 알아본다 해도 실제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게 여행이었다. 그래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준비를 했던 건데, 결론은 챙기길 잘했고 필요 없는 것도 있었다. 아이젠은 걷는데 필수였다. 삿포로 거리에 함박눈이 펑펑 내려도 일본인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냥 후드를 뒤집어 쓰거나 툴툴 털어낼 뿐이었다. 어쩌면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은 다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눈이 조금만 머리나 옷에 묻어도 질색하는 사람들만 봐왔는데, 물론 나 또한 눈비 맞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여긴 흔한 일상이었다.


공항에서, 식당에서, 관광지에서 마주치는 한국사람들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목소리가 크고,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급하게 뛴다거나 말이 많다거나 어쩌면 일상 속 우리들의 모습을 해외에서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선 늘 있는 일이고, 만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특히나 조용하고 차분한 일본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은 정말 눈에 띄었다. 나는 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 일행과도 대중교통이든 뭐든 조용한 곳에선 카톡을 하거나 메모로 소통했다. 이곳 현지인들은 조용했다.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 문화를 특별히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일본어를 따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올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든다. '남에게 피해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구나' 눈에 띄거나 튀는 걸 싫어하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규칙과 공중도덕을 잘 지킨다. 역사적인 일들만 봐도 한국인으로서는 거부감이 드는 나라이지만, 여행하기에는 좋은 나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자주 마주했다. 특히나 문을 여는 순간 아름다운 시냇물 소리가 흘러나오는 공중 화장실은 충격이었다. 생리 현상 소리를 묻기 위해 자동으로 노래가 흘러 나오고 세면대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 내려가는 버스 안, 대천휴게소에서 한국에 왔음을 뼛속깊이 느끼고야 마는데...


홋카이도, 그리고 그 안에서 삿포로, 비에이, 후라노, 오타루, 하코다테를 다녀왔고 모두 눈이 쌓여있었다. 외곽으로 갈수록 더 추웠고 눈도 많았다. 하지만,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어쩌면 서울에서 느꼈을 한기보다 아주 낮은 강도가 아니었을까. 실제 기온도 한국보다 더 높았다. 눈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지만, 잊을만하면 계속 눈이 내렸다. 설경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자로서 눈이 녹는 상황은 그리 반갑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춥지 않아서 다행이 아니었나 싶다.


홋카이도에서 인천으로 가는 날, 출국 심사에서 옷과 가방 소지품은 보통 다 벗지만, 신발까지 벗는다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홍콩, 유럽을 갈 때도 그렇진 않았는데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서 홋카이도로 들어갈 때는 하지 않았던 신발 보안 검색. 앞사람들이 신발까지 벗어서 레일에 올리는 걸 보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신발도 벗어야돼? 양말도 벗는건 아니지?' 대부분 홋카이도에 온 사람들은 두꺼운 방한화, 부츠를 신고 있었고 벗기 불편한데다 겉옷도 매우 두꺼웠다. 짐은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훨씬 더 많다. 홋카이도에서 구입한 간식이나 물건들이 워낙 많아서 한국으로 올 때는 양손이 무거워진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들 겉옷, 가방, 쇼핑백들을 모두 레일에 올리고 신발까지 벗는 행위를 일사분란하게 진행했다. 정신이 없었다. 나도 잔뜩 긴장해서 어떻게 하면 신발을 빨리 벗을지 머릿속에서 상상을 했다. 입출국 과정에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것 때문에라도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다. 내 한몸 건사하는 것도 힘든데...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제 인천으로 들어오면서 날씨를 보니 군산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이 있었다. 급히 군산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조회했고, 다행히 딱 맞는 시간대에 한 자리가 있어서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군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말 삿포로 만큼이나 군산에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더해져 눈보라가 몰아치는 극한의 상황을 마주했다.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무한반복하며 들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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