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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ㅈ가 Jun 07. 2020

대학생의 소개팅 일기

당신의 소개팅은 어땠나요?


*수년전 얘기입니다.


생각보다 바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3월 중순이었습니다.

그러던 금요일 밤, 친구에게 야심찬 카톡이 하나 옵니다. 


“ㅇㅇ야, 여자친구 있다고 했나?”

“당연히 없지!”

“소개팅 받아볼래?”     


올게 왔습니다. 이별의 아픔을 겪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마치 지금 제 상태는 피부에 딱지가 져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더 이상의 통증은 없습니다만, 실수로 딱지를 떼어내거나 세게 건드리면 아파옵니다. 소개팅을 나가는게 과연 딱지에 후시딘을 바르는 행위일지, 아니면 딱지를 거침없이 후벼파는 행위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그래도 저를 어여삐여겨서 이런 연락도 준거니까요. 다음날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친구는 퇴장하고, 자연스레 저와 상대방만 남게됩니다. 요즘은 참 세상이 좋아졌습니다. 이런식으로 서로 직접적으로 연락해서 만나는 장소와 날짜를 조율할 수 있으니까요. ‘첫 눈 오는날 청량리역 앞에서 만나자’ 이런 낭만적인 약속은 이제 할 수 없게됐습니다.  


저와 상대방만 단톡방에 존재하고 한동안 정적이 흐릅니다. 나름 눈치싸움을 하고 있는겁니다. 분명 서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을텐데요. 그런데도 내가 핸드폰을 늦게봐서 늦게 답을 남긴척 하기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먼저 인사를 건내는쪽이 뭔가 아쉬운 쪽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요. 저는 그냥 아쉬운 쪽을 하기로 합니다. 간단히 먼저 인사를 건냅니다.   


나 : 안녕하세요~

상대방 : 네 안녕하세요~^^

나 : 반갑습니다 ㅎㅎ  


저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와 반갑습니다는 대체 무슨 차이일까요? 정말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큰 일입니다. 상대방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이 없습니다. 저는 SNS을 잘 안해서 카카오톡 사진을 SNS처럼 활용합니다, 그래서 몇 장의 제 사진과, 수 십장의 저와 관련된 사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프로필 사진이 없습니다. 저에게 긴장감을 주기위해 일부러 지운걸까요? 원래 이런걸 잘 안해놓는 성격일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장이 없어? (화난거 아닙니다.) 많은 생각을 자아내는 행위입니다.     


저는 정보화 시대에서 상대방보다 정보에 뒤쳐진 실패자였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실패자가 되었고, 마음을 비우고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서로 가능한 날짜를 확인하고, 장소를 조율합니다. 장소는 대학로로 정해졌습니다. 이제 메뉴까지 정했고 만남의 날까지 기다리기만 하면됩니다.      


드디어 당일날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올 때 나름 옷을 신경써서 나왔습니다. 오늘은 약간 클래식한 스타일로 갈 예정입니다. 바지는 최근에 자주 입는 챠콜색 슬랙스로 결정했습니다. 거울을 보니 핏이 나쁘지않네요. 상의는 챠콜색 폴라티입니다. 바지와 깔맞춤입니다. 여기까지는 꽤나 촌스러워보일수 있지만 마무리로 네이비색 코트를 입어주며 코디를 마무리합니다. 오늘 하루종일 코트를 벗을일은 없을겁니다. 없어야만합니다. 위 아래 색깔이 같은게, 벗는 순간 스펀지에 나오는 실험맨 같아지거든요. 코트까지 입어주면 그래도 나름 볼만합니다. 요즘말하는 ‘댄디’가 이런건아닌가 혼자 생각해봅니다.     


학교에서 수업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약속시간은 저녁 6시입니다. 생각해보니 6시에 도착해서 밥집을 가면 웨이팅이 꽤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제안을 합니다. 6시에 카페에서 만나 얘기좀 하다가 밥집으로 이동하는건 어떨지요. 나름 현명한 제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다고 하네요.     


저는 카페에 먼저 도착해서 제 음료를 시켜놓고 테이블을 잡아놓았습니다. 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입니다. 음료는 아메리카노입니다.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어느새 반이 없어졌습니다. 아껴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의 순간, 한 여성분이 들어옵니다. 느낌적으로 상대방인걸 직감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찾고있는 그 눈빛이 느껴졌거든요.     


서로 가볍게 어색한 인사를 합니다. 상대방도 음료를 시키고 자리로 돌아옵니다. 드디어 상대방과 제대로 눈을 마주쳤습니다. 대화를 이것저것 시도해봅니다. 뭐타고 오셨는지. 수업끝나고 바로 오셨는지. 몇 가지 질문을 하다보니 진동벨이 울려서 음료를 받으러가셨습니다. 20초 안되는 시간이지만, 이 때 동안 또 많은 질문을 미리 생각해놔야합니다.      


동아리, 학과생활, 고향, 학교 선후배 등 이것저것 얘기했습니다. 잠깐 잠깐 침묵의 위기도 있었지만, 서로 힘을 합쳐 나름 잘 모면한 것 같습니다. 약 40분정도 얘기를 하다가 한번 더 침묵의 위기가 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장소를 옮길 것을 제안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도 지났는데 밥먹으러 이동하는게 어떨지. 흔쾌히 수락합니다. 그렇게 저희는 일어나서 미리 봐놨던 곳으로 갑니다.     


다행히도 자리가 있었습니다. 직접 카운터로 가서 주문하는 방식이어서 제가 일어났습니다. 이 피자로 먹겠다고 주문을하니까 선불이라고 합니다. 도시남자답게 삼성페이로 결제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와서 앉았는데, 여성분이 선불이냐고 여쭤보십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왜 다 긁으셨냐고 절반씩하지‘ 라는 말을 하십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얘기를하니까, 혹시 카카오페이하냐고 까지 물어봅니다. 결국 한사코 거절을 하고 식사를 기다리긴했습니다만 참 어려운 문제이긴합니다. 처음보는 사이에 결제를 어떻게할지에 관한 문제는요.


이제 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얘기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카페에서 이번 소개팅에 대한 결론을 이미 내렸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비슷했을 겁니다. 우리는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거란 생각을요. 그렇게 짧게 40분만 얘기해보고 어찌 그리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개팅이란게 원래 그런걸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제 저와 상대방은 모두 같은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린 앞으로 볼 일이 없는 사이임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이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참으로 고통스런 일입니다. 질문을 하고 답을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그저 대화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어색함을 쫓아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주제에 대해 말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뭔가 생산적이라는 느낌은 없습니다. 정말로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무의미한 대화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불안했나봅니다. 저는 불안하면 습관적으로 음료담는 컵의 컵홀더를 뜯는 습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뜯기 쉽게 점선이 가있는 곳을 2단으로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분해해서 마지막 순간에는 누가봐도 불안해서 조각조각 해놓은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됩니다.     


둘이서 먹기에는 피자양이 꽤나 많았나봅니다. 한 조각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하며 저희는 식당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제 서로의 집으로 돌아갈 차례입니다. 만나고 약 2시간이 지났네요. 이 날 분위기가 좋았다면 자연스레 또 다른 카페를 갔을테지만, 서로 얘기를 꺼내지않고 있습니다. 얼른 이 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것을 서로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지요. 이제는 헤어지는 갈림길이 왔습니다. 상대방은 왼쪽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저는 오른쪽으로 가서 버스를 타게 됩니다. 누가봐도 자연스레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갈림길입니다.     


이 순간은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서로가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음을 알고 있고, 오늘의 시간이 결과론적으로 상당히 무의미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린 앞으로 안 볼 사이고, 모르고 살아갔어도 전혀 무방한 사이로 다시 돌아갑니다. 사실상 오늘의 만남은 서로에게 허무한 빈 공간과 같습니다. 없어도 그만인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웃으며 인사를 해야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마지막 예의입니다. 제3자인 주선자에 대한 예의. 그리고 허무한 2시간을 함께 보낸 서로를 격려하는 예의.    

 

그리고 서로 인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응. 응. 조심해서 잘가~”

이제는 서로가 조심해서 들어갔는지 알 수도 없는 관계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여러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오늘 왜 설레지 못했을까. 내 현재 마음은 어떤 것일까.     

여러 고민을 하다가 명쾌한 답은 못 내리고, 그냥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그냥 혼자 카페가서 책읽고, 글쓰는게 내 인생에서 더 재밌는 것 같다는 결론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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