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離別

문학소년 - 09

by 령욱


이별 離別


<제 8장>


" 태어난 모든 것들은 기약조차 없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


기억, 추억, 행적, 나의 모든 것들로부터 따스하게 맞이해 주던 것들이,

기약 없이 온전히 차갑게 변하고서 맞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 저는 여러분의 이별의 종류는 어떠하게 있으셨는지

그저 잘 지나 보내고 계신지, 아님 그저 마음 깊이 묻어두시는지


한번 여쭤보고자 합니다.




<1> 내가, 너를 잊었던 방법은 다름 아닌 연습이었다.


나도 연습 중이야.


그런 날이 있다.

때론 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그런 날.


그저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왔던 사람이라서,

그렇게 행복했던 경험은 처음이라는 걸 잘 알아서.


나 솔직히 말해서

내가 원치 않아도 가끔씩 네가 나타나 마음이 일렁이고서

나의 잔잔한 일상을 멈칫한다.


그러다 결국,

내가 하고 있던 것들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냥 네가 없을 뿐인데, 그게 나의 문제라는 그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심히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다

내가 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깜박하고서 있을 때쯤,

그제야 다시금 정신 차려 펜을 든다.

그럼에도 네가 잊히지 않는 날이면,


그저, 묵묵히 밖에 나가 한 번 걷고 온다.


그러다 문득, 밖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주치며

충분히 네 생각을 하고서 그렇게 쓸쓸히 집에 돌아온다.


난, 그렇게 너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한다.





<2> 이별은 쓰라리기보단 서글픔을 남겼다.


따듯한 겨울


그 해 겨울은 무척 따듯했다.


정확히는, 매섭고 추운 바람들이 몰아치고

눈이 쌓이고, 입에 한기가 가득하고.

내게 아무리 힘든 일이 생기고 지칠 것 같아도


눈사람을 만들자며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며

눈싸움도 한 그 해 겨울은, 전혀 춥지 않았다.


온전히 너와 마주 보내고서 지낼 수 있었고

나의 이야기와 진솔함을 나누어서 너와 가졌고

아무리 한기가 들어오고 나를 괴롭혀도

너의 따스한 포옹덕에 내 마음을 뚫고서 들어오진 못했다.


너와 같이 손잡고 걸어간 겨울 바다는 하나도 춥지 않았고,

그저 행복과 충만감이 나를 가득 채워, 어떤 추위도 녹여버렸다.


그래서, 너무 따듯하다 못해 뜨거워서.

이 완벽하다 치부한 너와의 시간이, 너무 빨리 타버리는 사랑이면 어떡할까 걱정도 해보고

투닥투닥 다투며 이 사랑이 자작자작 오래 타는 모닥불이길 바라며 우리 둘 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잘 흘러갔다, 흘러간다.

잘 보내고, 잘 지내고.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이젠 그렇게 불타듯 따듯했던 마음 따윈 없는 것 같다.

마음에 벌써 고드름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이별은 많이 쓰라리고 아플 줄 알아서,

이번 겨울에는 혼자서도 충분히 춥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고드름이 생긴 걸 보면

쓰라리기보단 서글픔이 많은 것 같다.

마음의 눈물들이 모여서 얼어붙었으니 말이다.


모쪼록 네가 좋은 사람이었고

사랑했던 이라는, 그저 그런 진부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참 많이 쓰라리고 아플 줄 알았는데


그저 서글프다.

고드름이 네게 향하지만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이번 겨울은 나 혼자만 추우면 될 테니까.

그러길 바란다.


잘 지내길.


따듯한 겨울을 맞이하길,

소망한다.





<3> 죽음에 관하여



한 무더기 피우려 살포시 떨어트린 꽃가루에

고운 흙과 태양을 만나 뿌리를 내렸다


날 때부터 씨앗이 제비꽃과 닮아

푸르스름하니 어여뻐 보였는데


잎을 틔우더니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버티는

민들레와 다름없더구나.


그러다 네게도 어여쁜 홀씨가 생기고

하나 둘 흩날려 널리 알려감을 고하는 걸 보고 자랐지만


막바지에 죽어가며 꺾인 모습은

알고 보니 허리굽은 할미꽃과 다름없더구나


참 그 이름 모를 꽃

저 멀리 뜻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가며

그저 묵묵히 꽃가루를 휘날렸다





<4> 기약 없는 약속은 하지 말길.


기약 旣約


망망대해의 차디찬 바다를 보고 자랐다.

파도가 풀럭이며 다가오면 왠지 모를 거친 느낌을 받았고

때론 압도되어 마치 무너질 것 같았다.


그 바다의 색은 온전히 푸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어둡지도 않았다.

무언가 조화로워 언젠간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가 꼭 어떤 일이 있거든 항상 당신을 찾아와 안녕을 빌겠노라고.


나와 함께 유년을 보냈던 너를 떠나보내지 않고서

마음 깊이 묻어두고 간직하겠노라고.


하지만 그건 펄럭이던 바다에겐 너무 이른 기약이었던 탓일까,

내게 파도를 내밀어주던 바다는 썰물이 되어 뻘만 남기고 사라졌다.


때론 침을 질질 흘리며 내가 누구냐고 묻기도 하고

땅속에 갯지렁이들이 박힌 듯 정신을 혼미해하기도 하더라.


어쩌다 정신 차려 밀물을 들고 오시는 때에는

갯지렁이의 휘적임에 사라진 기억을 애써 메꾸고 사과만 건네는 모습에

나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내민 탓에 눈물을 감출 수가 없더라.


하늘도 참 야속하시지.

갈매기 바다에 없었다고, 쓰레기만 남고 떠났다고

그렇다고 이리 까막눈을 만들고 가시나


조화롭던 바다는 뻘만 두고 어두워져

영 돌아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저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하던 바다였는데

내가 너무 이른 약속을 했구나








이르고 이른 이별이었습니다. 순환하리라 믿을 뿐입니다.










첫 문장.


발타자르 그라시안 명언록 中.


태어난 모든 것들은 기약조차 없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