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소년 - 10
<제 10장>
어떤 마음을 누군가에게 보태어 보내는 것이 편지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편지가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결코 그 마음 또한 보낼 수 없으니 아무 제목이 없는, 텅 빈 편지가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없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낼 수 없단 건, 의도적으로 숨기고 싶은 내용이거나 또는 부끄러워 말 못 하는 것들일 테니까요
적어도 그렇게나마 말하고픈거니까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1> 전하지 못할 편지 - 25.06.29
그간 잘 지내고 계실까요.
어느덧 당신의 품을 뿌리치고 도망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모두가 무시했고, 포기했던 나의 얼어있던 씨앗을, 어여쁜 모종으로 거두어주셨고
부서지고 삐뚤어진 뿌리를 단단히 바로잡아, 지지대를 세워주겠다 말씀해 준 나의 귀인께
아마 전하지 못할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초여름을 지나 장마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차마 말 못 할 죄를 저질러서일지, 아직 당신이 주신 단단한 지지대 부서지지 않아서일지.
조심스럽게나마 안부를 여쭈고 싶은 마음이 종종 올라올 때면. 그저 제게 주신, 제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일상의 안녕을 더 즐기려 노력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와중에도 꼭 그런 걱정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습니다.
혹여나 그 지옥 같은 허무의 굴레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불안은 몇 주 채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난 4년간의 당신이 제게 내리 쬐 주신 햇빛이 너무 따듯했어서 그런가.
다행히도, 세상은 여전히 당신이 알려주신 대로 밝게 저를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찌 햇빛만 보고 살아갈 수는 없음을 당신께 배운 저로써.
이제 그 따스한 도피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4년 전 그때보단 아닐 수 있겠지만
다시금 용기를 내어 보고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만, 그럼에도 제가 꼭 전해야 할 말은 단언컨대 사과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도망친 것,
당신의 사랑과 노력을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여 내 마음의 불신을 심은 것.
당신께 받은 사랑을 나의 성장의 발판이 아닌, 인정과 성공의 기회로 바라본 것.
당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속여먹고서 합리화를 하며 결국엔 나 스스로를 붕괴시킨 것.
이 모든 것은 당신이 금기시하던 아주 큰 죄였지만,
끝끝내 알아차리지 못하고 또 혼자서 생각하고 내린 뒤틀린 구습의 폐해였음을 인정하고서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아주 큰 죄였지만, 뒤늦게 후회하며 회고해 보니
아마 이 모든 건 사실 2년 전부터, 없어졌다 안일히 생각한 구습인
스스로에게 던지고, 타인에게 던지던, 사소한 거짓말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입니다.
또한, 사람을 살리고서 당신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했던 이유는
진정으로 그 아픈 이들을 보듬고자 하는 마음보다 당신께 인정받고 싶었음이 무척이나 컸음을.
본디 그런 자세로 감히 제가 당신의 길을 걷게 된다면, 분명 저는 어떤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너무 뒤늦은 고해에, 많은 실망을 안길 거란 두려움이 앞서
말하지도 못하고 도망쳐 나온 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제 스스로를 먼저 속였기 때문에, 너무나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또한, 당신의 사랑은 결코 틀리지 않았으며
적어도 당신의 얼굴을 보고서 마지막으로 했던 약속들과
내게 주신 보배들은 잘 간직하고서 살아 나아가보리라 약속해 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령욱 올림 -
追伸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 전하지 않을 편지 - 2021.03.21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은 생각보단 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찌 그렇게 믿음과 사랑만을 주시는 당신에게 세상 살아가는 게 두렵단 이 말 한마디 하기 두려운 걸 보면, 전 알고 보니 겁쟁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지기만 합니다.
정도 있게 타인을 대하고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길 바란다며 주신 그 올곧은 말씀을
여태껏 지키면서 살아가려 노력했는데, 어찌 세상은 이렇게 각박하고 차갑기만 한건가요.
제가 보다 태생이 감정이 높게 태어난 아이라 그런 걸까요, 아니면 아직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또는 제 노력이 잘못된 방향일까요.
이젠 너무나도 지치는 삶이라서,
그 뼈저리게 아픈 과거의 굴레 속에 여전히 저는 남아있어서
다 포기할까만 생각하고 사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저는 아버지가 주신 말씀만 생각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어떻게 버텨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아버지가 제게 주신 정도와 기본을 지키면서 그리 살아가도록
다시금 버티고 또 버티며 있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아들 올림 -
<3> 전하고 싶은 편지 - 24.11.12
스승님, 잘 지내고 계실까요.
저는 스승님의 안녕을 묻고 싶은 날들이 참 많습니다.
누가 그러라 시킨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한평생 차디찬 겨울을 살아가던 제게,
봄바람을 타고 갑자기 나타나셔 선, 따스함을 선물해 주시고서 홀연히 사라지신 선생님껜
그저 감사하단 말씀과 보고 싶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그래서 유독 아무 말 없이 홀연히 사라지신 스승님을 참 원망하기도 합니다.
다만, 참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젠 이게 조금은 익숙해져서 일까요.
그리움이 제게 찾아오면, 전 이렇게 생각하고서 그 아픔을 잠시 넘기며 잘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저희는 참 알맞은 시절인연인 걸로 치부하고서 떠넘겨야 할까. 그리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마음 같아선 붙들어 매고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제게 봄과 여름의 따스함과 즐거움을,
가을의 선선함과 센티함을 즐기는 법과,
항상 차디찬 아픔을 지녔던, 과거의 제가 살아가던 겨울을 따스하게 맞이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난 뒤,
그렇게 두 해를 지나 어떤 변덕이 불었는지 참.
급작스럽게 가을의 갈대 바람을 타고 사라지신 스승님이시기에,
한없이 제게 사랑으로 대해주시고서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가셨기에.
참 알맞은 시절인연에 불과했던, 위대한 사람이자 사랑이었음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고.
그리 생각하는 바입니다.
참. 보고 싶습니다.
- 령욱 올림 -
문학 소년, 단편 소설 -『 국화 』 中
"어떤 마음을 보태어서 보내는 것 중에 말이야, 난 이상하게도 편지가 그렇게나 좋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