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국어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독후감을 더 써 오라고 하셨다. A4용지 한 장 분량이던 수행평가였고 나는 거기에 맞춰서 제출했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내가 독후감을 너무 잘 써서 좀 더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부탁이라도 하시는 듯 말씀하셨다.
내가 쓴 글이 아니었다. 제출 마감기한이 겁나서 선생님이 눈치채지 못할 글을 인터넷에서 복사해서 약간 수정만 해서 낸 글이었다. 부끄러운 글을 제출하고 받은 내 수행평가 점수는 만점이었다. 성인이 되고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면 그 기억은 매번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혼자 잠시 부끄러워할 뿐이었다. 점수는 살아가는데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고3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같이 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죽었다. 성적을 비관한 자살이었다. 학원 선생님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눈에 서린 슬픔을 감추진 못하셨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냥 친구가 결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많이 긴 결석 같았다.
그때는 성적표의 등급이 인생의 등급인 줄 알았다. 점수를 낮게 받으면 인생이 실패하는 줄 알았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학창 시절에 노력한 친구들은 대학에 가고 아닌 친구들은 사회에 나와서 노력하면 될 뿐이었다.
친구가 가고 나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했고 성인이 됐다. 취직을 하고 놀러 다니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남들 다 하는 그런 것들을 하며 살았다. 삶은 성적표의 등급으로 나뉘지 않았다.
친구는 여전히 미성년자지만 난 성인이 됐다. 이런저런 술들을 혼자서 참 많이도 마셔대다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에 꽂힌 적이 있다. 그의 변형인 AMF도 알게 됐다. 특이한 이름이 붙은 데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명한 건 같이 술을 마시다 먼저 뻗은 친구에게 하는 말에서 따왔단 설이다. 그러나 난 갱스터와 싸우다 먼저 간 친구를 기리며 만들었단 설을 가장 좋아한다. 먼저 떠난 친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작별인사인 것 같아서 그렇다. 마지막 말 한마디 할 기회, 술 한잔 사줄 기회도 주지 않고 간 친구가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