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몸은 무거워지고 머리는 늘 안개가 낀 듯 먹먹했다. 평일 오전의 은은한 햇빛을 받으며 커피와 함께 걸으면 좀 나을까 싶어 나갈 채비를 했다. 술 마시러 가는 거 아니냐는 엄마의 말을 등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쬐는 햇빛에 머리가 아파와 인상이 구겨졌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나와서 카페를 향했다. 카페는 길 건너에 있다. 뛰기 싫어 신호를 흘려보내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오른편에 손을 잡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모녀가 보였다.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 가고 있는지부터 초록불은 무슨 뜻인지, 차는 어떻게 달리는지 등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물어봤다. 아이는 그간 궁금했던 낯선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막 트인 말주변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 엄마는 차분히 하나씩 대답해줬다. 완벽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아이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대답인듯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 엄마의 태도였다. 차분히 눈을 맞추고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어떤 귀찮음도 없는 태도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워 인류애가 가득 해지는 순간이었다. 나 같으면 누군가가 쉬지도 않고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면 자리를 피하거나 직접 알아보라며 짜증을 낼 텐데. 그 누군가가 내 자식이라면, 내가 부모가 된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좋은 롤모델은 지척에 있었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영화 타짜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흔히 지성 있는 여자라는 걸 강조하고 싶을 때 따라들 하는 말이 됐다. 엄마는 그 학교를 나왔다. 학력이 반드시 지성의 지표는 아니지만 엄마는 둘 다 갖춘 사람이었다. 똑똑한 엄마는 늘 내 자랑거리이자 백과사전이었다. 내가 그 아이만 할 때부터 당신을 내려볼 정도로 큰 지금까지도 온갖 삶 속의 질문들을 명석하게 대답해주곤 했다. 그랬던 엄마가 요즘은 되려 내게 질문을 한다. 내 성장을 보듬어주던 그녀의 노화를 이젠 내가 배려하고 돌봐주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가장의 자리를 승계하는 숭고한 절차이자 자식의 도리겠지만 아직 자신이 없다. 이제 서른인데 아직도 구박데기다. 늙어갈 엄마와 미래에 있을 토끼 같은 자식들과 아내, 언제나 나보다 어릴 동생이 나에게 던질 수많은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아직 안됐다. 정확히 언제 준비가 끝날지도 모른다. 이 끝 모를 과정을 오늘도 그저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