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산의 색

by 김감감무

슬램덩크의 중간 즈음에 강백호의 첫 번째 농구화가 터져서 새 걸 알아보러 가는 장면이 있다. 소연이와의 데이트를 설레 하다가도 마음에 드는 농구화를 발견하자 날뛰며 기뻐하는 백호의 모습이 기억에 늘 남아있다. 강백호 농구화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이다. 그때 백호가 받은 농구화가 조던 1이다. 지금까지 많은 조던 시리즈들이 나왔지만 이것만큼 사랑받은 모델은 없는 걸로 안다. 농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패션으로 많이들 신는 유명한 모델이다. 오래된 농구화니 기능은 아쉽지만 일상화로 신기에는 적당히 편하고 상당히 아름답다.


그간 바닥이 뚫릴 정도로 신고 떠나보낸 농구화가 몇 켤레인지 셀 수가 없다. 백호의 열정이 담기고 북산의 색을 하고 있는 그 신발은 늘 다음 농구화 후보였다. 그렇지만 학생이던 내게 조던의 가격은 부담스러웠다. 육 개월도 못 신고 다 터트리던 때니 보급형을 신는 게 나았다. 여유가 생기고서는 기능보다는 패션이라는 평가 때문에 늘 망설였다. 다만 언젠가는 일상화로라도 조던 1을 사겠다고 혼자 되뇌곤 했다.


대부분을 스니커즈와 농구화에 신겨있던 내 발은 이제 늘 구두가 감싸고 있다. 이젠 언제나 살 수 있는 상황인데도 사고 싶어 했던걸 통째로 잊고 있었다. 코트 위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던 때가 추억이 된 요즘은 농구화 하나를 사면 삼 년을 신는다. 재작년에 산 흰색 농구화가 아직도 뽀얗다. 예전처럼 코트에 자주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니 몸도 마음도 농구를 잊어 가는 중이었다.


얼마 전 야간 근무 후에 퇴근을 하는데 엄마가 돈을 보냈다는 알림이 떴다. 무슨 돈이냐 물었더니 생일 축하 겸 용돈이라고 하셨다. 그제야 내 생일인 것을 알게 됐다. 연이어 친구들로부터 축하한단 말과 함께 피자 쿠폰들이 날아왔다. 친구들은 치킨보다는 피자를 좋아하는 내 취향과 생일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모른 체하라 했지만 집에 서프라이즈가 준비돼있다고 귀띔해줬다. 행복한 스포일러가 있다니 새로웠다. 우리 집은 대문을 열면 내 방이 바로 보이는 구조다. 난 방문을 거의 열어 놓고 다니는데 평소와 다르게 문이 닫혀있었다. 야간근무 후라 몽롱한 상태에서 봐도 인위적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문을 여니 의자가 나를 향해있고 그 위에 조던 농구화와 에어팟이 놓여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슬램덩크의 주제곡이 들리는듯했다. 살아내느라 잊고 있던 슬램덩크의 명장면들과 내가 코트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 첫 에어팟, 두 번째 에어팟, 첫 조던을 다 동생이 사줬다. 새 에어팟이 필요했던 것과 조던을 늘 갖고 싶어 했던걸 동생은 잊지 않고 선물해줬다.


정신을 어디 놓고 다니는지 잊고 사는 게 참 많아진다. 다들 내가 잊은걸 대신 잊지 않고 있었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기도 저주이기도 하다. 잊고 싶은 기억이든 아니든 차별하지 않고 가져가니 말이다. 잊고 있던 농구에 대한 사랑이 슬펐고 내가 잊은걸 대신 기억해주는 사람들 덕에 행복했다. 나도 잊지 않아 주는 사람이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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