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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감감무 Aug 27. 2024

이승우, 『독』

주인공 임순관은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기록해 줄 것을 청하는 타인들의 삶과 삶 자체를 구질구질하게 여기는 회의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한 비밀결사로부터 초대되고 자신의 내부에서 들리는 것을 행하라는 지령을 행하기까지의 과정을 일기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간단히 요약하기 불가능한 소설이다.

소설은 <말테의 수기>에 독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공기 속에는 확실히 독이 숨어있다. 너는 그것을 투명한 공기와 함께 들이마신다. 그것은 너의 몸속에 스며들어가 침전되고 굳어져서 기관과 기관 사기에 날카로운 기하학적 도형을 만들어낸다.“

-릴케, <말테의 수기>에서

작품 속 독을 악으로 읽어도 무리가 아닐듯하다. 임순관은 민초희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상의 악을 직면한다. 그러나 임순관은 선한 인물이 아니다. 그 또한 악이며 다른 악을 마주했을 뿐이다.

밖의 것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더럽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가 더럽힌다. 밖의 것이 독이라서 나를 더럽히는 게 아니라 독을 들이신 뒤 내가 만들어서 내쉬는 무언가가 나를, 밖을 더럽힌다.

그 또한 악이며 그가 행한 악을 통해 다스려지는 악이 있지만 태어나는 악 또한 있다. 악은 계속된다. 독으로 독을 다스릴 수 있다지만 악을 악으로 제압할 수는 없는 걸까.

점점 미쳐가는듯한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강렬했다. 이렇게 야수적인 인물이 이승우 작가의 작품에 있나 싶다. 한 인친님은 청년기 때 글이라서 그러신 거 같다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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