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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악마를 억누르는 일

by 김감감무

여자친구와 곱창전골과 태어나서 처음 마셔보는 청하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글로 쓴 적은 없지만 평소에 매크로처럼 하고 다니는 “운동하는 남자가 모두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운동 안 하는 남자는 다 틀려먹었다.”라는 말에 이어서 한 말이 있다.

연인 앞에서 비속어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떤 말은 비속어 없이는 충분히 표현 안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 많이 참지는 않았고 분명 이렇게 표현하는 내 심정을 이해할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거쳐서 뱉었던 그 말은 “남자가 좁밥같이 굴면 안 돼”였다. 그러곤 그 말을 풀어서 말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너그러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내가 너그러우려 하면 너도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이미 그러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쓸데없이 예민하게 굴어서 없어도 될 갈등을 만들거나 받아줄 수 있는 것도 받아주지 못하는 정신적 나약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여유로움이나 너그러움이 통장 잔고에서 나온다는 익숙한 우스갯소리에 대해서 강한 체력을 덧붙여야 한다는 말까지.

그런데 이렇게 돌이켜보니 굳이 ‘남자’로 한정지을 일은 아닌 것 같다. 남자로 한정지었던 것은 그저 그런 남자를 싫어하는 내 성향 때문이었다. 연인 관계에만 통용될 생각도 아닌 것 같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메모장에 ‘마음속 악마를 억누르는 일’이라고 짧은 메모가 저장되어 있었다. 언제나 지켜지지 않는 ‘조금만 마시자’라는 계획의 무산 앞에서 무엇이라도 건져내려던 발악이 남긴 문장이었다.

누구나 짜증 내고 화낼 줄 안다. 타고나길 둔한 사람도 있지만 타고난 게 아니라 높은 정신적 경지에 이르렀기에 둔해 보이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닐까. 너무 너그러워서 둔해 보일 정도의 경지. 강함보다 강한 것이 부드러움이라는 옛 무협 영화에서 매번 나오는 대사가 괜히 생각난다.

잘 쓰려고 쓴 글이 아니라 그냥 정말 휘발되어 날리기 좀 아쉬운 생각을 막무가내로 적는 거라 두서없고 엉망인 것 같다.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좀 좁밥같이 좀 굴지 말자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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