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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보지 못할 것이다

by 김감감무

오늘 그를 또 봤다. 그를 처음 본 건 전역하자마자 일했던 학습지 회사의 물류센터에서였다. 그가 입사했을 당시에 나는 나름 고참이었다. 아르바이트니 딱히 직책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조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업무 교육은 자연스레 내가 맡게 됐다.

스물두 살이었던 내가 지금의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사람을 후배로 대하는 일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군대물이 덜 빠졌던 시기였음에도 그만은 다른 사람들처럼 대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대한다는 것은 부끄럽지만 군대의 방식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강압과 위계와 계급과 폭력과 총과 화약과 고폭탄의 시공간에 절여져있던 군생활을 끝내고 들어간 물류센터는 어느 정도 군생활의 연장이었고 나는 회사에서마저도 잠깐 동안 피해자였고 대부분을 가해자로 지내고 있었다. 먼저 들어온 게 뭐라도 되는 마냥 굴고 위협적인 언행으로 군림하는 야만의 방식. 그때나 군시절이나 매번 그 중심에 있어서 참 부끄러운... 어쨌거나 나는 그랬던 사람이고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만은 그렇게 대하지 못했다. 뭐 때문이었을까. 그저 어렴풋이 어떤 죄책감의 향을 맡았을 뿐이다.

나름 신경 쓴다고 썼지만 그는 결국 회사에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그 회사를 다니는 기간 동안 했던 실수보다 그가 하루에 저지르는 실수가 더 많았다. 그는 결국 자발적인지 아닌지 모를 퇴사를 했고 남은 동료들에게 종종 최악이었던 동료로 회자되곤 했다.

그런 그를 나도 그곳을 그만두고 한참 지나서 우리 집 근처에서 마주쳤다. 우린 서로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나누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 못 하지만 그가 그때 했던 말은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한다.

"군대를 가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는 군 입대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자신의 문제가 군생활을 겪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그의 말에 턱을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뒤로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의 오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죄책감의 향은 그의 저 말을 듣고 나서부터 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군대를 갔다 오면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뭐였을까. 그것을 추적해 보기에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그는 내 밑에서 혹독한 군생활을 겪은 내 후임이 아니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해졌다. 그런데, 나와 같이 미안해야 할 사람들이 거스르고 거스르다 보면 많을 것 같다. 군대를 갔다 오면 그는 정말 나아질까. 정말 그럴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모르겠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글에서도 나는 솔직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용감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기도 하다.

그 뒤로도 나는 동네에서 그를 봤지만 만나지는 않았다. 매번 내가 피하거나 숨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오늘 또 집 근처에서 봤다. 이번에도 피했고 숨어서 만나지는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그를 계속 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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