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뤼시스』

by 김감감무

우리 친구들끼리는 "리끼리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네가 한 무엇이 나 같을 때나 쟤가 한 무엇이 저것들 같을 때 쓰는 끼리끼리를 뒤집었지만 뜻은 그대로인 우리들만의 유행어이자 관용어다. 끼리끼리 놀다 보니 하는 행동이나 언어습관도 비슷하다. 비슷한 놈들끼리 만나 친해지고 더 비슷해진다. 아닌가, 친해지고 나서 비슷해지는 걸까.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친구이게 하는 걸까 친구여서 비슷해지는 걸까. 무엇이 친구를 친구이게 하는 걸까.

대화편을 읽는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을 손과 발, 온갖 것을 다 동원하여 더듬어가며 전진하는 것 같다. 맞는 길인지, 도착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도착지가 있을지 모르겠는 혼란의 연속이다. 이 세상의 혼란들을 치워나가며 전진하는 것이 구도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하나의 영혼이 두 개의 몸에 깃든 것"이란 말을 단언했을까. 스승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에 대해서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작품 해설에서 "뤼시스는 어렵다"라는 문장만 네 번인가 본 거 같다. 정말 어렵다… 근데 운동이든 독서든 이렇게 좀 박살 나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더 넓은 세상 혹은 경지가 있구나를 몸으로 인지하는 경험이 어느 곳에서든 필요하다. 나아가자.

매거진의 이전글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