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by 김감감무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가버린 면접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면접관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 했다. 나는 내 강점은 인내심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온갖 애드립을 쏟아냈다. 횡설수설을 마치고 나니 면접관은 희미한 비소를 보이며 "일은 버티는 게 아니라 즐기셔야죠. 붙으면 평생 다닐지도 모르는데..."라고 빈정거렸다.

면접관과 면접자로 만난 게 아니었다면 즉각 개소리하지 말라고 받아쳤겠지만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대답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면접은 마무리됐다. 면접관은 자신의 마지막 말에 인상 쓰고 어이없어하는 내 찰나의 표정을 본듯했지만 당당히 걸어 나왔다. 탈락했다.(그 뒤로 바로 옆에 회사에 합격했다!)

어릴 때는 극강의 소심남이었는데 성인이 돼서는 성격이 크게 변했다. 계기는 군대에서부터였다. ​박격포 고폭탄 사격은 군생활 동안 두 번 쏘면 많이 쏘는 거라던 내 사수의 말과는 다르게 난 셀 수도 없이 많이 쐈다. 새로 온 여단장이 사격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손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긴장했지만 갈수록 덤덤히 기계처럼 사격을 진행했다.

탄은 날아가고 땅은 흔들리고 천둥 같은 폭발음이 잠깐 들릴뿐이다. 매번 사격 때마다 긴장을 느끼는 선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선은 계속 올라갔고 결국 정점을 찍는 사건이 생겼다.

사격 도중에 고폭탄이 불발이 났다. 쾅! 하고 날아가야 할 탄이 텅... 하고 포신 안에 얹혀버린 것이다. 분대장이었던 나는 장갑차의 윗부분에 앉아서(분대장 자리는 앉아있는 게 안전하다) 사격을 지시하고 있었다. 텅... 하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을 때 나를 올려보던 분대원들의 하얗게 질린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평소에는 시커먼 놈들이라 더 그랬다. 매뉴얼대로 차에서 내려 포 방렬 방향의 후방에 파놓은 호에 앉아서 간부들이 불발탄을 처리하는 걸 기다렸다. 불발은 났지만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그 뒤로 웬만해선 긴장을 하지 않는 성격이 됐다. 죽지만 않으면 다 지나가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갈수록 과감해졌다. 재미난 일도 위험한 일도 많았지만 잘 살아갔다. 이십 대 초반까지는 그랬다.

전역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 과감성은 제약을 받기 시작했다. 갈수록 할 수 있는 게 줄어들었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돼서 일한 첫 직장의 상사들은 자유분방한 내 언행을 늘 불편해했다. 자기 앞에서 긴장하지도 쫄지도 않는 나를 대놓고 싫어했다. 동료들은 나를 통해 사이다를 느꼈지만 지지해주진 못했다.

상사들은 이등병 같은 직원들을 좋아했다. 아부를 하든 빠릿빠릿하든 군기가 바짝 든 스타일이든 다양한 이등병들을 좋아했다. 난 이등병은커녕 말년병장처럼 굴었으니 미움받을만했다. 사실 나보다 훨씬 짬이 높은 사람들인데 막 전역한 혈기에 천지분간 못하고 덤벼댔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내시가 되는 건가? 이 배 나온 아저씨가 뭐라고 긴장한 척 각 잡고 있어야 하는 거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혈기는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식어갔다. 상사는 교묘하게 내 업무를 힘들게 만들거나 짤리고싶냐는 윽박을 지르는 등으로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는 다시 이등병부터구나를 느끼며 불편함을 참는 연기력과 역겨움을 버티는 인내심만 늘어갔다.

나도 모르게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출근은 가면을 쓰고 불편한 의상을 입고 매일 무대에 오르는 것이었다. 일은 버텨내는 거라는 나만의 철칙은 갈수록 단단해져 갔다.

오랜 휴식으로 가면을 잃어버렸던 나는 면접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일이 즐거울 리가 없다는 가면 뒤의 모습을 슬쩍 비춘 결과는 역시나 차가웠다.

즐거워야 할 것은 삶이다. 경제활동은 그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작은 곳에서 조금 위에 있다고 아랫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어른들을 모두 업어치고 싶지만 잠시 다시 가면을 써야 할 때다. 내가 어른이 됐을 때 후배들에게 그러지 않는다면 악순환을 끊는 작은 나비효과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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