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사람에게 분노했을까

경계를 넘는 사람 앞에서, 나를 지키기까지

by 김현

최근, 한 어머니로 인해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저녁 9시, 10시를 가리지 않고 전화와 카톡이 이어졌다. 아이를 재우고 겨우 시간이 날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 늦은 시간조차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 숨이 막혔다.

"늦어서 죄송해요" 한마디 없이,

그저 본인의 말을 쏟아내고는 끝.

그러던 어느 날 밤,
학원에서 쓰는 문제 풀이 프로그램을 집에서도 써보고 싶다며 방법을 알려달라는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그 시간은 저녁 9시가 훌쩍 넘은 늦은 밤이었다.

나는 복도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 한 톤도 높이지 못한 채, 애써 담담하게 응대했다.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더 고통스러웠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차가운 아파트 복도보다 내 안이 더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돌이켜보면, 이 어머니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수업을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계약 서류와 결제를 마감 직전에야 보내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었고, 질문할 때도 따지는 투였다.

"홈페이지 보니까 다른 혜택도 있던데, 우리 아이도 받았을까요?"

그 말 속에 숨은 불신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고객마다 차별할 이유도 없었고,

아이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도 없었건만, 그 말투는 마치 늘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들렸다.

그리고 나는, 늘 받아줘야 했다.
미소를 지으며, 이해하는 척하며.

하지만 그날 영상통화 이후, 나는 내면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신호였다.

다음 날,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냈다.

"늦은 시간 연락은 어렵습니다. 저에게도 컨디션 관리가 필요합니다. 학원 방침이니 지켜주시지 않으면 더는 수업을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숨이 트였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제야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고객이라고 해서, 모든 걸 참아야 하는 건 아니다.
내 경계를 넘기게 두면, 내가 먼저 무너진다.



*



동시에 나 자신도 돌아봤다.

혹시 나 역시, 누군가에겐 피로한 존재였을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겐 침범이었을 수도 있다.

정말, 나에게서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죄하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나 역시 부족함이 있고,
때로는 실수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 어머니와의 관계도 다시 한번 제대로 정립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늘 저녁 늦게 울리던 문자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연락이 올까봐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된다.

밤이 찾아와도 휴대폰을 더 이상 불안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그 어머니도 나름대로 내 마음을 존중하려 애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경계를 분명히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매번 당연하게 연락을 받아줬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선에 대한 개념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은 침범을 허용해왔기에,

그 경계가 애매해진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필수 조건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



요즘은 저녁이 되면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 휴대폰을 멀리 두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이것이 나를 지키는 작은 의식이 되었다.

"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마음의 경계를 존중해 주세요."

우리 모두 서로의 선을 함부로 넘지 않을 때,
비로소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아직은 어색하고 낯설지만, 나를 지키는 일이 결국 모두를 위한 일임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분노의 그림자 너머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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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