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by 김문

어제 공식적으로 짝사랑을 정리하기로 했다. 공식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전까지는 정리하기로 했다가도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질질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제 최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아, 얘는 날 좋아하지 않는구나. 내가 나에게 작은 생채기와 깊은 상처를 입혀가며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다.


함부로 좋아한 대가는 비참하다. 이전부터 얘는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에 서서히 정리를 하고 있던 와중이라 그나마 덜 아팠다. 하지만, 마음이 뻥 뚫려 가슴 한 켠이 시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슴 절절한 대단한 짝사랑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소소하게 좋아한다는 게 습관처럼 자리 잡혀 있었던 것이 문제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 습관적인 감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친구와 전화하면서 짝사랑을 종료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근데 내가 걔를 습관처럼 좋아한 것도 있는 것 같아.”

“맞아. 오래 좋아하면 그럴 수 있지.”

“게다가 요즘 일상이 똑같다 보니까 재미가 없어서 내가 얘를 못 놓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

“그렇지. 짝사랑하면 조그마한 거에도 설레니까. 짝사랑이 재미있긴 해.”

“이제 당분간 심심하겠다. 걔 좋아하면서 재미있었는데. 아,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이런 식의 대화였다. 타인에게 짝사랑 종료를 선언하면서 나의 결심이 더 단단해졌다. 짝사랑에도 이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짝사랑의 감정을 무 자르듯이 자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어봤다. 제발, 이 시린 감정을 다른 사람으로 메꾸려고만 하지 말자, 내가 나 자신에게 빌다시피 부탁했다.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잠귀가 밝아진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사람이 예민해진다. 겨우 선잠을 자는 와중에 손발이 너무 가려워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반이었다. 이놈의 모기들은 왜 자꾸 선량한 시민의 피를 빨아 먹는가. 게다가 여러 군데를 무는 바람에 아주 다양하게 가렵다. 다시 잠을 청해 보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유튜브를 본다. 어제 많이 자서 오늘 잠이 안 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눈이 너무 말똥말똥했다. 내일, 아니, 오늘 출근하려면 이제 자야 되는데 잠이 절대 오지 않는다. 결국 새벽 4시 반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잘 준비를 하였다.


이전에 불면증 증상을 세게 겪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불면증이 찾아온다. 하지만, 하지만, 오늘은 자고 싶었다. 여느 드라마처럼 청승맞게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마음이 시리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상태였다. 이 시린 마음이 조금이라도 괜찮아 지기 위해서는 얼른 자야 했다. 자고 있는 동안은 마음이 시리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여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뒤척이다 옆을 봤는데, 내 옆에 우리 집 한량이 있는 것이었다.

“뭐야, 너 언제 왔어? 말도 없이?”

“아, 이 근처에서 약속 있었는데 집까지 가기 너무 멀더라고.”

“야, 아니 그래도 말은 하고 오지.”

“에이~ 언니 좋다는 게 뭐야~”

너무 황당했다. 온다고 얘기라도 했으면 미리 매트라도 깔았을 텐데. 결국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다 우리 집 한량이 이 새벽에 어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내일 출근이라고 얘기했지만, 금방이면 된다는 한량의 말에 대충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가 보니, 웬 캠핑카가 있었고 거기서 한량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신부가 나타나질 않았다. 나와 우리 집 한량은 캠핑카 좋다며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귓가에서 ‘웨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아…이놈의 모기새끼.


꿈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 날 정도로 선잠을 자고 있었던 거 안다. 하지만, 선잠이라도 자는 거랑 말똥말똥 깨어있는 거랑은 천지차이다. 귓가에 앵앵대는 모기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플래시를 켰다. 벽에 모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보니 모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또 모기가 있었다. 내 피를 얼마나 빨아먹었는지, 평소에는 잘 도망 다니던 녀석들이 내 손바닥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모기를 세 마리나 죽였으니, 이제 더 이상의 모기는 없을 거란 생각으로 이불을 덮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자, 또 시린 마음이 내 잠을 방해했다. 짝사랑을 끝냈다는 기억이 상기되면서 문득 마음이 아려 오는 것이었다. 제발, 지금은 안 된다. 내일 청승을 잔뜩 떨더라도 지금은 자야 내일, 아니 오늘 출근한다. 그렇게 시린 마음을 달래며 다시 잠을 청했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꿈을 꾸며 다시 잠을 자던 와중, 또 모기가 나의 잠을 방해했다. 이젠 욕지거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도대체 얼마큼의 살생을 해야 잠을 잘 수 있는가. 다시 플래시를 켜고 모기를 죽였다. 그러자 또 시린 마음이 찾아왔다. 다시 나를 달래며 잠을 청했다. 잠을 자려고 하는 와중 또 모기가, 모기를 찾아 죽이면 시린 마음이 번갈아 가며 나의 잠을 방해했다. 이런 사투 끝에 마지막으로 본 시간은 새벽 6시 반이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아침 7시 반이었다. 겨우 한 시간을 기억나지 않은 꿈을 꾸며 잤다.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오는 느낌을 오랜만에 느끼며 일어났다. 눈을 뜨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눈 아래 꺼풀을 누군가 잡아 당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일어나서 벽을 보니 어젯밤, 아니, 몇 시간 전의 사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제 잠드는 데에 집중하느라 미처 처리하지 못했던 살생의 흔적을 치우고 출근 준비를 했다. 웬 11월에 모기냐는 투정과, 모기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다짐, 그리고 오늘부터 짝사랑은 없다는 다짐을 하며 출근을 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다만, 가방에서 나온 뱃지를 보며 마음이 약간 시큰해졌다. 청승 안 떨고 싶은데 사람의 마음이라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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