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부끄럽죠

국에 들어간 양파를 싫어합니다.

by 김문

방금 ‘싫어하는 음식: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 라는 책을 다 읽었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싫어하는 음식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나도 싫어하는 음식을 이야기 할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한다 고백할 땐 더욱 그랬다. 그리고 마치 대단한 사실을 이야기 할 것처럼 ‘나 사실…’ 이라는 말을 서두에 깔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왜?’ 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서 ‘아, 아직까지 남의 취향을 온전히 존중하기엔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문득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남들이 봤을 땐 뭐 이런걸 싫어하느냐고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나도 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릴 거 안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받아들여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써본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쭉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피할 수 없는 재료 중 하나가 바로 양파다. 양파는 생으로 먹으면 맵싸한 맛이 나고, 볶으면 단맛이 올라오는 아주 마법의 재료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양파는 얇게 썰어 양파절임으로 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기도 하고, 양파 장아찌를 만들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볶아 캐러맬라이징을 하여 여러 음식에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에 들어간 양파는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국에 들어간 양파는 생 양파처럼 아삭한 식감에 매운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캐러맬라이징한 양파처럼 단맛이 강하게 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맛. 그냥 아무 맛도 안 난다. 그런데 식감은 어찌나 이상한지. 물컹한 느낌이 들면서도 양파 본래의 아삭함이 아주 미묘하게 남아있다. 나는 이 식감이 너무 싫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식감을 가지고 있는 양파는 국에 한두 개만 들어가지 않는다. 심하면 국의 절반이 양파로 채워질 때도 있다. 나는 그 모습마저 너무 징그럽게 느껴져서 가끔 양파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는 국을 보면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국에 들어간 양파에 대한 기억은 편식이 아주 심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된다. 어렸을 때 나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편식쟁이였다. 물론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다들 편식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정도가 심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채소를 거의 먹지 않았다. 남들 다 상추에 싸 먹길래 나도 궁금해서 상추쌈을 쌌다가 시도조차 못 해보고 그대로 내려놓았던 기억도 있다 (지금은 상추쌈? 없어서 못 먹는다). 어릴 때 아주 대단하게 편식을 했던 나는, 편식을 하는 나의 행동을 어리게 생각했고, 나이를 먹으면 천천히 고쳐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편식을 서서히 고쳐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 양파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 때 당시에 아이들에게 편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워버리기 위해 학교에서 급식 먹을 때 잔반 남기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이든 싫어하는 음식이든 무조건 싹싹 비워야 했다. 나는 이 순간이 고통이었다. 학교 급식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보다 싫어하는 음식이 더 많이 나왔다. 그런데 이 모든 음식들을 남김없이 다 먹어야 한다니, 차라리 밥을 안 먹고 싶었다. 하지만, 밥을 안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선생님은 밥을 안 먹는 꼴을 볼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일 밥을 남김없이 비워야 했고, 편식이 심했던 나는 매번 식판을 거의 꼴등으로 검사 받았다.


그래서 결국 편식이 고쳐졌냐. 그럴 리가. 대신 요령이 늘었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연습장을 찢어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꽁꽁 싸맸다. 그리고 다 먹었다고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고 연습장에 싸 놓은 음식은 화장실 변기통에 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야. 너 음식 남긴 거야?”

“선생님께 다 이를 거야.”

라고 했고 심지어는 선생님께 이르는 시늉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게 정말 대단한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못 먹는 음식을 못 먹는 게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기서 내가 잘못한 건 변기통에 음식물을 버린 것 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 이런 요령도 통하지 않는 날이 왔다. 바로, 맨 앞자리에 앉게 된 날이었다. 당시에는 교실에서 밥을 먹었는데, 자리를 거의 매일 바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결국 내가 맨 앞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이젠 연습장을 찢어서 먹기 싫은 음식을 버리는 편법도 사용하지 못한다. 나는 꼼짝없이 내 식판에 있는 음식들을 다 비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반찬들은 다 맛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밥과 반찬들을 싹 비웠다. 그리고 나에게 아주 큰 산인 국이 남았다. 나는 국에 남은, 특히 양파가 아주 많았던 건더기들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었다. 그리고 몇 번을 고뇌했다. 지금 먹을까? 먹기 싫은데. 하지만 먹어야 하는걸. 그러다 큰 결심을 하고 숟가락으로 싹싹 모은 건더기를 한 입에 집어넣었다.


씹지도 않고 삼킬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내겐 그런 능력이 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삼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번은 씹어야 했다. 아주 소름 끼치는 식감이 입 안에서 느껴졌다. 아니, 차고 넘쳤다. 도저히 그것들을 씹고 싶지도, 삼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삼킨 척 하고 선생님 앞에서 식판 검사를 받았다. 식판 검사를 통과한 뒤, 나는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리고는 변기에 입안에 머금고 있던 양파와 기타 등등을 뱉어냈다.


아직도 국에 들어 있던 양파와 건더기들을 한 입에 머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그 때 생각을 하면 혀 끝에서 소름이 느껴진다. 마치 아직도 내가 양파를 머금고 있었던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입을 다물고 싶지 않다. 그 소름 돋는 식감 때문일까, 아니면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었다는 기억 때문일까, 다른 편식은 어느 정도 고쳐졌지만 아직도 국에 들어간 양파는 먹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이상하고 기이한 식성을 누군가에게 토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국을 끓이면 무조건 들어가는 양파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어릴 적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치킨 같은 맛있는 음식을 싫어한다고 하면 그 사람의 취향 같지만, 양파 같은 채소 종류를 싫어한다고 하면 아직도 편식을 못 고친 어린 아이 같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심지어 양파를 통째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딱 국에 들어가는 양파만 싫어한다니, 특이 식성이 아닐 수가 없다. 한 번은 우리 집 한량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식성 희한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누가 양파 식감을 그렇게 따지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이 소리가 아니야!’ 라고 외치는 장인처럼 식감을 아주 예민하게 따지는 사람인 것 마냥 이야기 하였다. 사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난 힘없이 바스라지거나 물컹한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만 보면 맛과 식감 둘 다 중요한 내가 아주 깐깐한 스페셜리스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민감한 사람은 아니다. 맹세한다. 다들 맛이나 식감에 관한 취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이지 맛과 식감을 아주 예민하게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다시 생각해 봐도 대한민국에서 ‘국에 들어간’ 양파를 싫어한다는 걸 허심탄회하게 고백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혀 끝부터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글에서라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대단한 편식쟁이도 아니고, 채소를 못 먹었던 어린 아이는 더더욱 아니다. 난 그저 국에 들어간 양파를 싫어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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