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안녕, 그 찬란하고 온전한 것에 대하여

by 김문

우리는 모래성을 쌓는 관계였을까. 모든 인간관계는 다 모래성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관계인걸까. 아무리 멋있게 지어봤자 모래성은 모래성인데, 조금 대충 지을 걸 그랬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파도에 휩쓸린 형태가 아니다. 파도라는 형태의 불가항력이 쓸어버린 모래성이라면 흩어져도 물에 젖은 채로 곱게 쓸려 내려가는 형태일 것이다. 비록 모래성이 무너진 건 안타깝겠지만 그래도 나름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누가 모래성을 밟아버린 것이다. 이제까지 공들여 쌓아놓은 모래성을 실수로 밟았건 고의로 밟았건, 균열이 생겨버린 모래성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제일 힘든 건 이런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쌓아놓은 모래성들이 동시에 위태롭다는 뜻이다. 그것도 제일 멋있게 쌓아놓은 모래성들이. 옆에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는 내가 다 우울하다. 하지만, 이걸 우울하다고 티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너희들의 갈등 때문에 우울하다.' 라고 말하면 분명 또 그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배려가 몸에 배인 사람들. 정말 착한 사람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배려고 뭐고 그냥 크게 한 번 싸워줬으면 좋겠다. 한 번 크게 다투고,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얘기하고, 적어도 이 관계에서 그 누구도 눈치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 나는 '위대한 안녕'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사실 노래제목이다. 가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This night will send you the great farewell'. 당신에게 위대한 작별을 말할 수 있는 적절한 관계, 그 관계가 참 부럽다. 화자는 본인의 아픈 마음을 숨기고 상대방에게 위대한 안녕을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노래가 상당히 따뜻하다. 듣는 내가 다 위로를 받을 만큼. 하지만 위대한 안녕을 건네기는 참 힘든 것 같다. 이별의 상황에서 그 노래에서 내는 따뜻함을 흉내도 못낼 것 같다. 내가 어떤 관계에서든 이별을 고하는 건 거의 두 가지 상황으로 나뉜다. 하나는 진짜 꼴보기 싫어서 잘 살든 근근히 살든 알아서 살라고 하면서 연락을 끊는 것, 하나는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지만 이 관계를 놓을 수 없어 간신히 실낱같은 관계를 잡다가 제 풀에 지쳐 놓게 되는 것. 두 가지 상황 다 위대한 안녕을 건넬 수는 없었다. 내 속이 너무 좁은 탓인걸까.



이쯤에서 위대한 안녕은 어떤 걸까 생각해봤다. 위대한 안녕, 그 관계에서 매듭을 아주 예쁘게 짓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는 이 관계가 풀리지 않게 라이터로 지져서 마무리하는 것일까. 어쩌면 후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안녕을 고한 상황에서, 이 관계 때문에 더는 아파하지 않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위대한 안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 게 가능해? 일단 나는 불가능할 것 같다. 위대한 안녕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도덕적이고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온전하고 가장...뭐 하튼 그런 형태의 안녕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찬란하고 온전한 형태의 안녕을 고할 자신이 없다. 아마 겉으로는 그게 가능하다고 쳐도, 속은 완전히 곪아있겠지.



지금 관계에서도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괴롭다. 괴롭지만 나는 이미 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너무 많이 줬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끊어내지 못하고 질척거리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이들 사이에서 괴로운게 이 관계를 끊어내는 것보다 나을 만큼. 이럴거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줄걸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 다시 돌아가도 나는 이들에게 또 마음을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놓기가 어려운 사람은 다시 회수하기도 어렵다. 아마 결국 이 관계가 끝나게 되고, 내가 이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위대한 안녕이 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 왜냐하면 아마 나는 이 사람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괴로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일단 어떻게 흘러가나 두고봐야겠다. 나는 어차피 이 관계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 위대한 안녕-태인 노래 좋다. 꼭 한 번 들어보고 당신들에게도 위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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